"80년 5ㆍ18때 광주 금남로 가톨릭센터에 있을 때 한 시민이 계엄군에 머리를 맞아 피를 흘리며 골목에 쓰러져 있는 것을 봤지만 무서워 나가지 못했다. 이웃을 구해준 착한 사마리아인이 아니라 그 상황을 피해버린 사람으로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올해 구순(九旬)인 대주교의 말엔 깊은 회한이 묻어났다. 오는 20일 주교 성성(成聖) 50주년을 맞는 윤공희 대주교는 17일 기자들과 만나 "내가 받을 영광은 없다. 인간으로서 칭찬받을 일도 없다"고 했다. 이어 "사제 생활 중 부끄럽게 생각하는 두 가지가 있다"며 5ㆍ18의 '아픈 기억'을 회고하기 시작했다. 그는 "5ㆍ18이 지나고 진상 규명과 구속자 석방을 위한 시국 미사를 하려다가 '또 사람들이 잡혀가면 어쩌나'라는 걱정에 미사를 안 드렸다"며 "나중에 신도들이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꼬리를 내렸다'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듣고 실수했다는 생각을 했다"고 '두 번째'부끄러움을 고백했다.
하지만 윤 대주교의 '고해성사'와 달리 그의 삶은 사회정의 실현과 인간성 회복을 위한 실천으로 채워져 왔다. 윤 대주교는 1963년 10월20일 주교 성성을 한 뒤 73년 11월30일 제7대 광주대교구장으로 착좌해 27년간 교구장을 맡았다. 1980년 5ㆍ18 광주민주화 운동의 현장에서 그 아픔을 광주 시민들과 함께 온 몸으로 겪어야 했다.
"광주의 큰 시련과 고생을 바탕으로 인간의 기본권을 신장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완성을 위해 살아갈 수 있는 민주사회를 이뤄야 한다. (5ㆍ18 가해자에 대해) 용서를 한다고 해서 정의에 대한 요구를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최근 한국 천주교계가 국정원의 대선 개입 규탄에 앞장서고 있는 데 대해 윤 대주교가 명확히 찬성의 입장을 보인 것은 그래서 당연한 것이었다. 그는 "80년 5월 광주처럼 정의를 요구하는 움직임으로 봐야 한다"며 "천주교계가 (국정원 대선 개입에 대한 진실과 정의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뜻과 같이 참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 대주교의 과거 회상은 무거웠지만 10분전에 도착해 일일이 기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농담으로 인터뷰를 시작하는 등 분위기엔 화기가 돌았다. "제가 제일 싫어하는 것은 기자들과 인터뷰에서 (말을) 많이 하는 것"이라고 했지만, 미사와 같았던 그의 인터뷰는 시침이 한 바퀴를 돌고도 10분이 더 지나서야 끝이 났다.
윤 대주교의 주교 성성 기념행사는 22일 오전 10시30분 광주대교구 주교좌 임동 성당에서 열린다.
광주=안경호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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