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의회가 16일(현지시간) 밤 국가 부도와 정부 폐쇄를 잠시 유예하는 내용의 초당적 합의안을 통과시켰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합의안에 서명하면서 전세계를 긴장시킨 워싱턴 발 위기는 16일 만에 막을 내렸다. 하지만 워싱턴 정치가 2011년 이후 예산안 처리와 국가부채 상한 조정을 둘러싼 극한 대립을 되풀이하고 그때마다 미국 및 세계 경제가 충격을 받았다는 점에서 미국 정치권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민주ㆍ공화 양당이 마련한 합의안은 이날 오후 8시 12분 상원에서 81대 18의 초당적 지지로 먼저 가결됐다. 2시간여 뒤인 오후 10시 20분에는 공화당이 다수인 하원에서도 285대 144의 압도적 표차로 처리했다. 국가 부도 시점인 밤 12시를 불과 100분 남겨놓은 시각이었다.
하지만 35쪽 분량의 합의안은 예산과 국가 부채 문제를 한시적으로 연기한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합의안에 따르면 예산은 내년 1월 15일까지 예년 수준의 지출을 허용하고 국가부채는 내년 2월 7일까지 일시적으로 상한선을 두지 않기로 했다. 이번 사태를 초래한 공화당 내 강경 보수 세력이 건재한데다 상원은 민주당이, 하원은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 구조가 여전해 제2, 제3의 위기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합의안 시간표에 따르면 3개월 뒤인 내년 연초부터 의회는 예산 삭감과 부채 조정을 놓고 이번보다 더 심각한 갈등을 빚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공화당 소속 존 베이너 하원의장도 성명에서 "건강보험개혁법(오바마케어)의 폐지 또는 시행 연기를 위한 방안을 계속 찾겠다"고 경고하며 또 다른 갈등을 예고했다. 공화당은 연방정부폐쇄(셧다운) 사태를 야기하며 요구한 오바마케어의 주요 내용 수정을 이번 합의안에 전혀 반영시키지 못했다. 베이너 의장은 "우리는 잘 싸웠지만 당장 이기지는 못했다"며 예산전쟁에서 패배했음을 시인했다.
미국은 국가 부도를 가까스로 피했지만 정치 구도의 한계는 고스란히 노출시켰다. 상원과 하원의 다수당이 다를 경우 정치적 합의나 타협을 이끌어내기 어렵고 그로 인한 정치ㆍ경제적 손실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특히 공화당의 타파티 같은 극단 세력이 힘을 얻을 경우 타협은 더더욱 어려워진다. 상원과 하원은 셧다운 현실화가 가시권에 들어왔을 때도 오바마케어에 대한 자신들의 주장을 담은 안을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며 타협을 거부했으며 국가 부도 직전에야 겨우 타협안을 만들었다. 이 같은 극한 대립에 대해 존 매케인 상원의원(공화당)은 "상원에서 경험한 가장 부끄러운 일 중 하나"라고 고백했다.
미국 피터슨재단은 보고서에서 2011년 이후 계속된 의회의 예산 전쟁과 부채 조정 갈등으로 미국은 국내총생산(GDP)의 3%, 금액으로 따져 7,000억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고 분석했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도 이날 브리핑에서 "(이번 사태의) 승자는 없으며 우리는 이미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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