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가방은 어느새 패션 소품의 범주를 넘어 사회적 신분의 상징이 돼 버렸다. 값비싼 유명 브랜드를 상징하는 묵직한 자물쇠 잠금 장식이 달린, 무게 1㎏이 훌쩍 넘는 가방을 들고 다니는 여자들을 남자들은 이해할 수 없다. 짐 싸서 가출한 사람처럼, '빅백'이라는 이름으로 유행하는 커다란 가방을 메고 다니는 것 역시 남자들에게는 그저 신비로운 현상이다. '도대체 저 안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이 같은 남성의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사치품의 대명사가 된 여성 핸드백을 조명하는 전시회가 열린다. 12월 29일까지 서울 신사동 시몬느 핸드백 박물관 지하 2층 갤러리에서 무료 전시되는 '여자의 가방'전은 두 명의 남성 사진작가 김용호, 홍종우씨가 작업한 가방을 주제로 한 사진을 소개하는 자리다.
"개인의 사적 공간인 가방에서 여성의 영혼을 훔쳐 볼 수 있으며 가방은 소유자의 자아 정체성에 기여한다"고 주장한 프랑스 사회학자 장 클로드 카프만의 저서 에서 모티프를 따왔다. 가방을 통해 문화심리학적 성찰을 유도한다는 취지로 개막일인 지난 8일에는 정신과 전문의 김현철씨의 강연을 열기도 했다. "새로운 가방을 찾는 심리 중 하나는 나를 정화하려는 의미이며 무의식의 내용물을 담아주는 그릇인 가방을 통해 욕구를 치환하는 것"이라는 김씨의 주장이 담긴 텍스트도 전시회 한 편에 걸려 있다.
패션, 광고 사진 작업으로 유명한 김 작가는 자신의 이번 전시에 '아가씨가방에들어가신다'는 제목을 달았다. 하나의 방처럼 꾸민 가상의 핸드백 안에 들어가 본다는 의미로 띄어쓰기는 하지 않았다. 가방 입구를 표현한 듯 지퍼 달린 빨간 가죽으로 다른 공간과 분리한 작은 방 안에는 정면과 좌우에 모두 거울이 걸려 있다. 각각의 거울 위로는 여인의 나체와 가방이 실크 프린트로 찍혀 있다. 그는 우선 "거울을 통해 타인을 향한 호기심에서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보게 하고 싶었다"고 한다. 정면 거울에 프린트된, 열린 가방을 위에서 찍은 사진은 자본주의 사회의 세속적 욕망을 투영한다. 타인의 사생활을 훔쳐 보고 싶은 욕구와 가방이라는 물질 그 자체에 대한 욕망이 동시에 읽힌다. 방의 입구에 '너 자신을 알라'는 뜻의 라틴어를 써 놓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난해 신진 작가를 발굴하는 공장미술제에 참여했던 홍 작가는 "누군가의 삶의 무게를 전하는 매개체"로 가방을 바라본다. 그는 평범한 여성들을 인터뷰해 무심코 넣어 둔 가방 속 소지품에서 이야기를 끌어냈다. 비닐 코팅된 네 잎 클로버에는 백혈병 병동에서 만난 환우와 "언젠가는 아이스크림을 원 없이 먹자"고 약속했던 아련한 기억이 담겨 있다. 찢어진 다이어리에는 취업 준비생의 막막한 미래의 고민과 수영장에서 1㎞를 헤엄치고 나서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그의 일상이 숨겨져 있다.
작가는 자막을 넣어 사진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극적으로 표현하는 자신의 장기를 살려 가방에 담긴 이야기의 한 단면을 TV모니터에 넣어 걸었다. 사연의 주인공들이 직접 사진의 모델로 나섰다.
전시는 이 박물관을 만든 핸드백 제조업체 시몬느가 새로운 브랜드 '0914'을 론칭할 2015년 9월까지 2년간 9회에 걸쳐 열게 될 전시 프로젝트 '백스테이지(Bagstage)전'의 첫 행사다. 박물관 측은 사진작가 외에도 음악가, 수학자, 배우, 언론인 등의 시선으로 가방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제시할 계획이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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