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후 7시 서울 목동 KT체임버홀. 지휘자의 손이 허공을 가르자 굵직한 첼로 연주가 앞서고 클라리넷의 청아한 선율이 뒤를 따랐다. 리허설이 아니라 본 무대였지만 이곳 저곳에서 삑삑대는 음 이탈이 속출했고, 박자는 원곡보다도 한참 느렸다. 그래도 검은 정장을 차려 입은 연주자들의 표정은 그 누구보다 진지했다.
이 무대는 사회복지법인 기쁜우리복지관에 소속된 지적ㆍ자폐성 장애청소년들로 구성된 '기쁜우리챔버오케스트라'의 두 번째 정기연주회였다. 조금은 느렸지만 하모니는 아름다웠다.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의 삽입곡(Between calm and passion)이 연주될 때는 숨죽여 무대를 지켜보던 관객 350여명이 일제히 음을 흥얼거리기도 했다. 이날 연주회에서는 '캐논 변주곡', 가요 '거위의 꿈' 등 6곡의 앙상블과 3곡의 합주가 두 시간가량 이어졌다.
이 오케스트라는 2010년 창단했다. 연주자는 첼로, 클라리넷, 바이올린, 비올라, 콘트라베이스, 플루트 등 6개의 악기를 담당하는 18명. 모두 학생 신분이어서 따로 시간을 내 모이기가 쉽지 않았지만 공연 석 달 전부터는 매주 수, 목요일마다 한두 시간씩 가양동 복지관 강당에 모여 복지관이 섭외한 강사들의 개인 지도를 받으며 맹연습을 이어갔다.
공연 전 만난 백리나(19ㆍ지적장애 3급)양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인 '넬라판타지아'를 연주해보고 싶어 3년 전 무작정 오케스트라 단원이 됐다고 했다. 하지만 난생처음 악기를 만져본 터라 연주는커녕 악보조차 볼 줄 몰랐고 비올라로 계이름 익히는 데만 한 달이 넘게 걸렸다며 웃었다. "선생님께 혼나면서도 연습 날만 손꼽아 기다릴 정도로 비올라를 사랑하게 됐어요."
첼로의 중후한 소리에 반해 본인 체구보다도 큰 악기를 선택한 황지원(22ㆍ지적장애 3급)씨는 "오케스트라는 호흡이 중요한데 최종 리허설 때까지 다른 악기들과 박자가 맞지 않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1년 반 동안 단원들을 지도해 온 지휘자 이영규(32)씨는 "악기 위에 손 위치까지 하나하나 잡아 주다 보면 한 곡을 완성하는 데 10개월은 걸린다"며 "무사히 한 곡을 끝내면 그렇게 대견할 수가 없지만 긴장이 풀어질까 봐 일부러 잘했다는 소리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연주 실력이 늘면서 이들 단원들의 장애도 많이 극복되고 있다. 오케스트라 운영 담당인 임종민 복지관 자원개발부장은 "오케스트라 활동이 지적 장애를 가진 청소년들에게 뭔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고, 합주를 하면서 동료애까지 만들어줬다"고 말했다.
'You raise me up(유 레이즈 미 업)' 합주를 끝으로 이날 연주회는 막을 내렸다. 관객들은 기립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연주를 마치고 벌겋게 상기된 얼굴을 한 18명의 단원들을 보며 이씨가 말했다. "얘들아, 너희 정말 잘했어."
조아름기자 archo1206@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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