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대리, 이것 좀 봐. 겉으로 봐선 우리랑 별반 다를 게 없는데, 마무리를 이렇게 했네. 요거 사진 좀 찍어."
16일 경기 화성시 현대ㆍ기아차 남양기술연구소 정문 앞 잔디밭. 널려 있는 세계 각 메이커들의 자동차들이 마치 자동차 박물관을 연상케 한다.
자동차 부품업체 관계자들은 차들의 보닛을 쉴새 없이 열어 제치며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현대차에 흡ㆍ차음재를 납품하는 한 협력사 관계자는 "일반 모터쇼에선 전시차량의 보닛 한번 열어 볼 수가 없다"며 "부품회사 입장에선 세상 어디를 가더라도 돈 주고도 못 보는 쇼"라고 말했다.
나흘 일정으로 이날 막 오른 '현대ㆍ기아차 R&D 모터쇼'는 한국에만 있는 세계 유일의 자동차 전시회다. 일명 '자동차 누드쇼.' 신차와 컨셉트카의 화려한 외관만 볼 수 있는 모터쇼와 달리, 여기선 자동차의 속살과 뼈대까지 볼 수 있다고 해서 이런 별명이 붙었다. 관람객들이 만지거나 열어 보고 타 볼 수도 있을 뿐 아니라, 내부가 훤히 들여다 보이는 절개 차량, 완전 분해되고 골격만 남은 차량 등이 전시되어 있다. 올해엔 모두 106대의 국내외 차량들이 10개 구역으로 나뉘어 전시되고 있다.
김진호 자동차분석팀장는 "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사들에게 최신 기술 트렌드를 보여주고 연구개발 경쟁력을 키워주기 위해 마련한 일종의 동반성장 행사"라며 "이젠 국내 부품 업체들이 학수고대하는 행사로 자리를 잡았다"고 설명했다. 부품업체들로선 외국 유명차량의 부품들을 연구하려면 차를 통째로 구입해서 뜯어봐야 하지만, 여기선 현대차가 차량을 구입해 자세히 공개해준다.
크로스멤버, 어퍼ㆍ언더암 등 섀시 부품을 제작하는 협력업체 ㈜화신의 박병철 설계실장은 "한 종의 부품을 만들 때마다 경쟁차 3종 정도 뜯어보는데 이 행사 덕분에 매번 1억원 정도의 비용부담을 덜고 있다"고 말했다.
2005년 처음 열렸을 때 이 행사의 이름은 '경쟁차 전시회'였다. 연구소 내 특정 연구파트에서 들여다 보고 그냥 폐기하기보다는 다른 파트 연구원들과도 공유하는 게 낫겠다 싶어 연구소내 차량을 한데 모은 게 행사의 시초다. 정병환 책임연구원은 "원래 사내 연구원들을 위한 행사였지만 우연히 본 협력사 직원들의 요청이 쇄도해 이듬해부터는 부품협력사에게도 공개했고 그 다음부터는 일반인에게도 개방했다"고 말했다. 2010년부터는 행사 이름도 지금의 'R&D 모터쇼'로 바뀌었다.
행사는 올해로 10회째다. 모터쇼가 아니기 때문에 특별한 홍보활동도 안 했지만 관련업계와 자동차공학도, 마니아들 사이에 소문이 돌면서 이젠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꽤 유명 행사로 성장했다. 초창기 전시차량은 45대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100대가 넘고, 방문인원도 올해는 1만명을 훌쩍 넘을 전망이다. 최근에는 외국경쟁사 직원들도 오고 있는데, 굳이 막을 이유는 없다는 게 현대차의 입장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물음표를 갖고 행사장을 찾은 협력사 관계자들이 느낌표를 갖고 되돌아 왔다고 할 정도로 품질향상과 동반성장에 도움이 되고 있다"면서 "행사를 앞으로 더욱 내실화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화성=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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