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북서부 레온시에 2004년 들어선 레온카스티야 현대미술관은 그 외양이 휘황찬란하다. 대형 색유리 6,320개가 건물 외벽을 덮은 이 미술관은 시의 대표 유적인 16세기 완성된 레온대성당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세계적인 볼거리로 부상했다.
그러나 요즘 미술관은 생기를 잃어버렸다. 오후가 되면 전시관과 로비는 텅 비어버린다. 지난해 전시관을 찾은 방문객은 겨우 3만1,000명. 6년 전 방문객의 4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매뉴엘 올베이라 레온미술관 총괄 책임자는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스페인의 미술관들이 예산 삭감 및 직원 감축으로 위기를 겪고 있다"며 "교육활동이나 전시가 축소되고, 완전히 문을 닫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건축양식으로 국제적인 호평을 받았던 스페인의 새 미술관들이 골칫거리로 전락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4일 보도했다. 한때 풍부한 재정과 의욕으로 건축미가 가미된 호화미술관을 지었던 지방정부가 10년간의 부동산 붐이 막을 내리자 예산을 삭감하고 나서면서 미술관 운영에 차질이 빚어진 것이다.
부동산붐이 한창일 때 지역 정치인들은 경쟁적으로 아이콘이 될만한 문화시설을 짓기 위해 세계 유명 건축가들을 모셔왔다. 2000년부터 2010년 사이 스페인의 미술관은 51개에서 136개로 급증했다. 발렌시아시는 스페인 초현실주의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가 디자인한 과학전시관, 영화관, 오페라 하우스, 대형 수족관 등을 지으려다 처음 예상한 비용의 3배인 10억유로(1조4,520억원) 이상이 들게 되자 정치적 논쟁에 휘말리기까지 했다. 문화도시 산티아고시도 예상 비용보다 4배 많은 4억유로를 들여 건물 4개를 지었지만 올해 사업을 중단해야 했다. 레온미술관 연간 예산은 2007년 1,060만유로에서 올해 520만유로로 반토막 났다.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입장료(5유로)를 받으면서부터 방문객은 눈에 띄게 줄었다. 재원 삭감으로 전시횟수를 종전 연간 3회에서 2회로 줄여야 했고, 새로운 작품을 구입하는 기금은 동결됐다.
전문가들은 "많은 정치인들이 구겐하임미술관 덕분에 세계 문화 중심지로 탈바꿈한 빌바오시의 성공에 눈이 멀었다"고 지적한다. 97년 개관한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은 80년대부터 기획, 수립해 독특한 디자인으로 지어졌고, 전 세계 유명미술관도 눈독들일 만한 작품을 보유하는 등 장기적인 노력을 기울여 성공했다. 빌바오시에 자문했던 미술관컨설턴트 마리아 사바우는 "'빌바오를 따라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만 가진 정치인들이 뚜렷한 목적과 현실성을 고려하지 않고 건축가에게 백지위임해 추진하다 결국 실망스러운 결과만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레온미술관의 올베이라는 "좀 더 겸손할 필요가 있었다"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라도 문화에 공공 투자하는 건 여전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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