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금 미터기 하나 조정하려 7시간째 기다리고 있어. 오늘 하루 허탕쳐서 사납금 13만원만 날릴 판이야."
법인택시기사 이길호(63)씨는 14일 오후 4시 과천 서울대공원 주차장에서 짜증 섞인 말투로 불만을 터뜨렸다. 지난 12일 서울택시 기본요금이 600원 오른 뒤 이를 미터기에 반영하기 위한 조정 작업이 시작된 이날 공원 주차장은 4,000여대가 넘는 서울 법인ㆍ개인 택시들이 몰려 포화상태였다. 주차장에 진입하기 위해 대기중인 택시 수십대도 300m가량 길게 늘어서 있었다. 주차장 구석에 마련된 미터기 조정소에선 6~7시간을 기다려도 미터기 조정 작업을 마치지 못한 기사들의 항의가 쉴새 없이 이어졌다.
비슷한 시각, 또 다른 조정소가 마련된 마포구 상암동 난지천 공원주차장도 택시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3,000대가 넘는 택시들이 주차장을 가득 메웠고, 뒤늦게 온 택시들은 가양대교 위 중간지점인 3㎞밖까지 밀려났다. 그외 태릉 사격장과 창동의 한 주차장에 마련된 조정소도 아침부터 몰려든 수천여대의 택시들로 진통을 겪었다.
이런 혼란이 벌어진 것은 이번 택시 요금 인상에 따른 미터기 조정을 서울시가 미리 지정한 미터기 조정소 4곳에서만 실시하도록 해 택시들이 첫날부터 대거 몰렸기 때문이다.
택시조합 등에 따르면 하루 최대 수용차량이 3,700여대인 서울대공원 조정소에는 1만 2,000여대의 택시가 몰렸고, 하루 최대 수용차량이 1,500여대인 상암동 조정소에는 이보다 3~4배 많은 택시들이 운집했다.
서울시가 4곳에서만 조정하도록 한 것은 절차를 간소화하고 택시들의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과거 민간 미터기 수리상에서 조정할 경우 택시당 4만5,000~6만원의 비용이 들었으나 이를 일괄적으로 처리해 2만5,000원으로 줄였다. 아울러 이전엔 미터기 조정한 뒤 품질시험소에서 미터기 조작을 방지하는 절차인 봉인을 거쳐야 했으나 이를 통합한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개인ㆍ법인택시조합과 사전 협의를 거쳐 택시회사별로 조정 순번을 배정했다"며 "미터기 조정 기간이 다음달 13일까지 한 달 가량 남아있는데 기사들이 순번을 어기는 바람에 한꺼번에 몰렸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택시기사들은 서울시가 7만2,000여대에 이르는 택시의 조정 수요 예측에 실패했다며 거세게 비난했다. 미터기 조정이 늦어질수록 금전적 손해를 보게 되는 구조라 기사들이 빨리 조정하기 위해 몰릴 수 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박상섭(50)씨는 "미터기 조정을 안 하면 기존 요금에 600원만 더 받아야 해 손해를 보는 데다 이번에 부활한 시계외 할증추가요금 20%도 포기해야 하니 다들 빨리 조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허모(44)씨는 "미터기 조정을 안하고 추가요금을 받았다간 손님에게 멱살 잡히기 십상이어서 마음 편하게 운전하려고 다들 순번도 어기면서까지 나와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말했다.
이모(51)씨는 "4년 전 요금 인상될 때만 해도 개인ㆍ법인택시 기사들이 50여곳에 이르는 민간 미터기수리상에서 자율적으로 미터기를 조정했는데 길어야 1시간이면 충분했다"며 "시의 이번 조치는 현장을 모르는 탁상행정이었다"고 꼬집었다. 개인택시기사 이창수(47)씨는 "오늘 쉬는 날인 '다'조라 나왔는데 너도나도 빨리 미터기를 조정하겠다며 나와 5시간째 기다리고 있다"며 "이렇게 복잡한 상황인데도 정리할 관리자가 안 보여 안타깝다"고 말했다.
손현성기자 hshs@hk.co.kr
손효숙기자 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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