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정부의 원자력발전 청사진이 큰 윤곽을 드러냈지만, 방향은 여전히 모호하다. 이명박정부의 '원전 올인' 전략에서 크게 후퇴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원전을 안 짓거나 축소하겠다는 건 절대 아니다. "모호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원전의 현실"이란 평가도 있지만, 그런 만큼 논란은 계속 커질 것으로 보인다.
13일 민관 합동 워킹그룹이 내놓은 제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이하 기본계획)은 2035년 원전(설비용량 기준) 비중을 22~29% 범위로 권고하고 있다. 이명박정부가 세웠던 1차 기본계획상의 원전비중 목표치(2030년 41%)보다 많게는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정부 때보다 후퇴했다고 해서 '원전축소'로 해석하는 건 오해다. 지금도 원전비중이 26%에 달하기 때문에 사실은 현상유지에 가깝다. 만약 분모에 해당하는 전력수요가 대폭 증가할 경우, 원전 비중을 현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선 원전을 더 지어야 한다. 바로 이 때문에 "이번 기본계획은 내용상으론 원전확대인데 표면상 원전축소처럼 보이는 착시가 숨어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최종 실행계획은 워킹그룹의 권고안을 토대로 정부가 짜겠지만, 논란 거리는 곳곳에 숨어 있다. 현재 건설 중이거나 건설이 예정된 원전은 총 11기. 신월성 2호기(설비용량 100만㎾)와 신고리 3ㆍ4호기(각 140만㎾)가 내년 7~9월 완공을 앞두고 있고, 신한울 1ㆍ2호기(각 140만㎾)도 2017~2018년 완공을 목표로 공사가 진행중이다. 또 신고리 5~8호기와 신한울 3ㆍ4호기 등 6기가 건설예정 상태이고, 강원 삼척과 경북 영덕에도 총 4기 원전을 짓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이미 공사가 시작된 원전은 그냥 가겠지만, 미착공 원전의 운명은 가늠키 어렵다. 수요전망에 따라 착공에 들어갈 수도 있고, 보류 또는 폐기될 수도 있다. 한 원전 전문가는 "극단적인 예로 원전 목표치를 29%로 잡으면 더 지어야 할 것이고 22%로 정하면 유보될 수도 있다. 그만큼 22~29%라는 목표치 자체가 너무 광범위하다"고 말했다.
결국 핵심은 이번 권고안에 빠져 있는 전력수요 전망을 정부가 어떻게 책정하느냐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 처장은 "지난 정부의 에너지정책기조가 바뀌었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정말 중요한 수요전망이 빠져 있어 제대로 평가를 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진짜 논의와 논란은 이제부터라는 얘기다.
워킹그룹 쪽에선 목표치를 20%대로 낮춘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강조했다. 워킹그룹 원전분과위원장인 박주헌 동덕여대 교수는 "최초 제시된 범위인 7~35%에서 의견을 좁히기도 어려웠다. 어쨌든 30% 밑으로 떨어뜨린 것은 원전비중을 낮춰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라고 전했다. 더 낮추지 못한 이유에 대해선 "전력현실을 고려할 때 그 밑으로 떨어뜨리면 우리 경제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바로 여기서 또 다른 문제가 나온다. 국민적 원전거부정서 등을 감안해 목표치를 낮추기는 했지만, 과연 원전의 '빈 자리'를 무엇으로 채우느냐가 관건이다. 일단 태양광 같은 신재생에너지는 제1차 기본계획 때와 같은 11% 수준으로 제시돼 대안이 되기 어려운 상황. 결국 석탄(현재 31%)과 LNG(28%)로 메워야 한다는 얘기인데, 둘 다 안전하긴 하지만 ▦석탄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다는 점 ▦LNG는 비싼 발전단가가 부담이다. 그래서 일각에선 "값싼 원전을 포기한 대가이고 결국 국민들이 부담해야 할 몫"이란 지적도 나온다.
아울러 원전비중 축소로 원전수출차질이 불가피한 점도 득실논란을 불러일으킬 요소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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