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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의 쪽빛보다 푸르게] <5> 남사당 명인 남기문·남기수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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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욱의 쪽빛보다 푸르게] <5> 남사당 명인 남기문·남기수 형제

입력
2013.10.13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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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사당의 끓는 피아버지 남형우, 근대 남사당의 중흥조… 형 남기문, 국악계 남성스타들의 스승동생 남기수는 예맥예술단 꼭두쇠 "모든 기예가 몸속으로 들어와"● 남사당의 미래"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불구 지원 부족… 사물놀이는 남겠지만 오버액션 많아져고유 악기 속 소리 숙성시켜 끄집어내야… 멸시·천대의 기억 빼고 모두 전수할 것"

가히 축제의 계절이다. 높푸른 하늘이 조명이 돼주니 관중의 환호는 탄탄한 용수철이 다. 남사당의 꼭두쇠 남기수((54ㆍ남사당 예맥예술단 단장)씨의 시즌이 온 것이다. 의정부의 신곡동 주민을 위한 잔치(11일), 단양의 김삿갓ㆍ온달 축제(12일) 등 요즘이면 거의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지는 지역 축제의 분위기를 띄우는 데는 남사당 만한 게 없다.

세계를 들썩이게 한 사물놀이에서 영화 '왕의 남자'등 한국인에게 체질화한 모든 연희가 남사당에서 연원한다. 초가을은 축제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남사당패의 시간이기도 하다. 가을이 되면 이들에게는 번갯불에 콩 볶아 먹을 시간도 아까울 지경이다. 평균 10여 차례는 서로 다른 곳에서 판을 벌인다. 인형극(꼭두각시 놀음), 덧뵈기(탈놀이), 줄타기, 풍물(농악), 버나(접시 돌리기), 땅재주 등 기본적인 여섯 마당놀이와 열 두발 상모까지 이들은 볼거리 없던 시절, 민중의 판타지를 대변했다.

박첨지, 묵대사, 평양감사, 영노, 귀팔이, 피조리, 상좌, 박첨지 손자, 꼭둑각시(박첨지의 본처), 돌머리집(박첨지의 첩), 상여, 절, 청노새, 홍동지…. 서울 강남구 삼성동 무형문화재 전수회관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민속학자들의 연구에 필수였던 인형과 소품들이 우선 눈길을 잡아 끈다. 절어 있는 조상들의 손때가 그대로 보인다.

지난 2009년 9월 유네스코가 한국의 문화 유산으로 지정한 이 전통 종합 기예는 내년 5월 이 남사당패의 탄생 50주년을 앞두고 또 다른 미래를 생각한다. 40주년 행사를 기획했던 형 남기문(55ㆍ국립국악원 악장, 국립국악원 사물놀이 수석)씨는 남사당 반 백 년의 역사다. 원일과 김용우 등 국악계 남성 스타들의 스승이기도 한 그는 동생 기수씨와 함께 한창 시절, 당대 최고의 기량을 과시했다.

이들은 철저한 공동체다. 손윗뻘 남자는 무조건 아저씨 혹은 형이다. 기수씨가 "덕수 형"이라 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사물놀이를 세계화시킨 김덕수씨가 바로 남사당패 출신이기 때문이다. "학교로 치면 2기 선배인데 어려서는 걸립도 같이 했죠." 인형극, 풍물, 인형 제작에 특히 재주가 있던 맏형 기환씨는 올해 작고했다.

한창 시절 이들은 국문학계, 민속학계는 물론 언론계 인사들의 친구였다. 한국일보 사진 기자 출신으로 민속의 현장이면 어디든 달려갔던 사진 작가 정범태, 기층민들의 기예를 정규 학문의 연구 대상으로 격상시킨 국문학자 양주동ㆍ서연호와는 막역했다. 기문씨는 "양씨가 영락없는 학자였다면 서씨는 소주잔을 함께 한 술벗이었다"고 돌이킨다. 학계와의 연은 현재 이북5도청 문화재전문위원으로 있는 양종승 박사가 잇고 있다.

남사당은 한국인이 공유하는 문화이기에 앞서 이들에게 가업이다. 남사당의 전 바탕을 한 몸에 간직한 아버지 남은영이 작고할 때 형 기문씨는 중학교 1학년이었다. 전설적 명인이었던 아버지의 기억에 대한 답 대신 기문씨는 "가슴 미어진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똥구녁 찢어지게 가난하게만 살다" 1978년에 세상을 등졌다. 남은영은 남사당 연희의 전 과정을 마스터해 현재의 남사당 놀이판을 만들었다. 절멸됐던 덧뵈기 놀음의 대사를 기억해 살려내는 등 놀이가 현재 형태를 유지하는 데 결정적 공을 세우기도 했다.

기문 씨는 "내 자식들에게 고민을 대물림 하고 싶지 않다"고 못박았다.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 등재에 거품 현상이 있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지정에 따르는 월드 투어 지원금 제공 등 실질적 혜택이란 전무하다"고 전했다. 남사당 가업을 이어야 한다는 명제가 이래저래 구두선이 되고만 현실이 야속하다. "음식에, 하다못해 비보이까지 한류를 걸치고 나오는데 막상 전통 공연단은 개밥에 도토리 신세인 현실 아니에요?"

그런 자탄에는 전수 조교 노릇만 24년 해온 자신에 대한 책망도 숨어 있다. 문화재 지정까지의 번거로운 절차 때문만은 아니다. "젊은 자들은 한 반 년 배워 놓고는, 나가서 다 아는 양 남사당 단체를 만들죠."자식들에게 대물림하고 싶지 않다는 결심이 절로 생긴다고 한다.

"우리의 민속 예능은 멀티(multi)스러워야 한다" "이 속에서 컸고 이 속에서 죽을 거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람은 말했다. 전통 연희의 총체성이다.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축소되기도 했지만 국가의 지원은 원래 턱없이 부족했다고 두 사람은 입 모은다. 원칙적으로 국가 지원은 1년에 1회 정기 공연 때 1,000만원. 한 달에 나오는 단체지원금 350만 원으로 전수생 500여명(실제 50여명)을 거둔다는 것은 애초 불가능하다. 정작 공연을 하려면 40여명은 필요한데 회사원, 자영업 종사 등 제 각각인 이들에게 남사당은 부업일 수밖에 없다. 현재 서울 강남구 삼성동 무형문화재 전수회관에 여타 예능 분야와 함께 입주해 있지만 이들은 여전히 불편하다. "흙 밟고 라면과 소주를 벗삼던 우리였다."

민중의 가슴에 들불을 지르던 남사당의 기예는 이제 어떻게 될까? 그 중 나름의 양식화를 갖춰 세계의 문화유산이 된 사물놀이를 보자. "향후 사물놀이는 나름의 역사성을 갖고 하나의 연주 형태로 장르화되어 남을 것이다."기문씨는 "재즈와의 접목이나 창극화 등 김덕수의 새 시도가 사물놀이의 붐을 형성하는 데는 기여했다"며 일단 긍정하지만 "이제는 오버 액션이 많아져 악기 속의 소리를 끌어내는 우리의 전통에서 멀어졌다"고 우려했다. 난타, 도깨비 스톰, 모듬북 등 일련의 공연물이 사물놀이의 생명력을 입증한 것이긴 하지만 "제 살 뜯어 먹기 아니면 행사 동원용"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해결책은 우리 고유의 악기들 속에 있는 소리를 숙성시켜 끄집어 내는 것이다. 1964년 방방곡곡을 돌며 펼친 포장굿 당시, 그는 김덕수와 한 무대에 섰다. 김덕수가 장고를 치면, 그는 무동으로 나와 어른의 어깨 위에서 재주를 부렸다. "나를 던지고 받고 아찔했어요."

그는 사물 연주를 비롯해 태평소, 탈춤, 버나, 살판(땅재주), 인형극, 줄타기(어름산이와 대화 나누는 역), 무동 등 남사당의 모든 기예를 익혔다. "지금 나만큼 하는 사람 없다. 그 속에서 자란 결과 모든 기예가 내 몸 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지금은 나이가 나이니만큼 하향 곡선을 긋고 있다지만 가슴에 타오르는 불길을 옛 어르신들의 호통으로 대신했다. "이제는 힘이 없어 너희들만큼 못 하지만 아직도 멀었다, 이 놈들아!"

그 불호령에는 깊은 한이 서려있다. 새마을운동으로 마을 자체가 일거에 쑥대밭으로 변하는 참상이 벌어졌다. 이를 지켜본 그들은 자신들만의 전승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제 그들에 대한 홀대, 아니 상대적 빈곤감은 버전업됐다. 지난 1964년 3월 10일 부친이 양평에서 남사당을 새로 만들자고 발의한 이래 과연 실질적으로 무엇이 달라졌는지 자꾸 자문하게 된다.

옛 예인들 사이에서도 자식 3명 있으면 똑똑한 놈부터 판소리, 악기, 땅재주를 가르친다는 속설이 있을 만큼 남사당패는 과거에도 평가 절하됐다. 국립국악원 학예연구사 은주석씨는 "기층서민의 정서가 그대로 묻어난 종합예술인 남사당의 보존가치는 매우 크다"며 "심국시대 이래 이어져 온 연희와 밀접히 결부된 다양한 음악만으로도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말했다.

"남사당 놀이 모두를 제자들에게 넘겨줘야죠. 멸시와 천대의 기억은 빼고…." 향후 계획에 대한 답이었다.

장병욱선임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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