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가계의 소비여력이 이미 2002년에 바닥났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앞으로 가계소득이 의미 있는 수준으로 증가하지 않는다면 소비 부진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얘기다.
박종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13일 '우리나라 가계의 소득, 소비, 저축 및 부채의 추이와 시사점'이란 보고서에서 "우리 경제가 가계저축과 가계부채라는 소비여력을 1999~2002년의 4년 만에 사실상 소진해버림으로써 2003년부터 세계 최저수준의 가계저축률과 과다한 가계부채 등 열악한 소비환경이 형성되기 시작됐다"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외환위기 이전 기간인 1982~1997년 경상 민간소비 증가율(연평균 14.9%)은 가계 처분가능소득 증가율(15.7%)과 거의 비슷했고 오히려 적었다. 하지만 1999~2002년 4년간은 외환위기로 처분가능소득 증가율이 연평균 5.6%까지 급락했으나, 민간소비 증가율은 12.9%로 위기 이전과 거의 차이가 없었다. 당시 가계는 소득보다 많은 소비를 충당하기 위해 그간 쌓아놓았던 저축을 처분하고 신용카드 사용, 은행 대출 등 빚을 내기 시작했다.
박 연구원은 "2002년 가계 순저축률이 0.4%까지 내려가 저축을 더는 줄일 수 없게 되자 2003년부터 가계부채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이때부터 소비자들이 민간소비 증가율을 처분가능소득 증가율에 맞춰 크게 둔화시키기 시작했다"며 "이 시점부터 경제활력 둔화, 내수 부진, 투자 부진, 고용 부진, 청년 일자리 문제, 낮은 저축률, 높은 가계부채 등 우리경제가 당면하고 있는 다양한 부정적 현상들이 수면위로 부각되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박 연구원은 "저축과 가계부채라는 완충장치를 4년(1999~2002년) 만에 소진한 후 2003년부터는 소득에 맞춰 소비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며 "향후 가계부채를 더 늘리거나 저축을 소진하는 식으로는 의미 있는 소비활성화가 이루어지기 어렵고 소득 자체가 증가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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