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병ㆍ의원들의 고전(苦戰)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피부과나 성형외과 등 일부 과목 병원들이 선전하고 있지만 치료보다는 미용 등에 특화한 곳이 대부분이고, 드물게 버티고 있는 오래된 내ㆍ외과나 정형외과들은 대부분 경영난에 헐떡이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실태조사 결과 전국 동네 의원은 지난해 1,625곳이 폐업하고 1,821여 곳이 신규 개원했다. 지역 주민과의 유대가 중요한 1차진료기관 특성상 신규 의원들이 얼마나 제 기능을 하고 또 살아남을지 불안하다는 게, 매년 반복돼 온 전문가들의 우려다.
1차의료서비스의 공백은 국가 의료전달체계의 파행, 즉 환자들의 큰 병원 쏠림현상을 가속화했고 2, 3차 의료서비스의 부실과 환자들의 불만을 심화해왔다. 한국의 국가 의료시스템이 안고 있는 이 같은 총체적이고도 만성적인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시스템 전반에 대한 대수술이 불가피하다는 것도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지적이다.
정부조차 손 놓고 있는 이 총체적 의료난맥을 끊고 지역 주민 스스로 건강을 지키려는 실험이 1994년 경기 안성에서 시작됐다. 의료생활협동조합(의료생협)이다. 병원도 못 믿겠고 의사도 못 믿겠다는 주민들이 십시일반 자본을 출자해 병원을 짓고 직접 운영에도 참여하는 의료생협은 1차의료기관, 즉 마을주치의로서 지난 20년 동안 공동체 안에 뿌리를 내려왔다. 10월 현재 주민들이 직접 병원 운영에 참여하는 모범적 의료생협은 전국 20여 곳으로 늘었고, 경기 부천 등 3곳도 연내 설립을 준비 중이다.
과연 의료생협은 현실 의료시스템의 공백에 대한 대안일 수 있을까. 우리는 의료생협이 수행해온 역할과 성과, 의료생협 활성화의 걸림돌과 숙제 등을 살피면서 그 가능성을 확인했다. 우리는 그들의 소중한 성취와 아직 주목 받지 못한 가능성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의료 전문가들 역시 의료생협의 성과를 후하게 평가하면서 "특히 주민과 의료진들이 자력으로 일군 성과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제는, 지역마다 사정은 달랐지만, 대동소이했다. 불안정한 재정과 설비ㆍ인력난, 조합원들의 저조한 참여열의.
유사 의료생협과의 차별화도 숙제로 꼽혔다. 2011년 생협법이 개정돼 전체 진료의 50%까지 일반인 진료가 허용되면서, 설립 요건이 느슨한 의료생협을 개설해 영리 목적의 병원 영업을 하는 곳들이 폭발적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2010년 127개였던 의료생협은 2년 새 무려 230여개가 늘어났고, 그 중 상당수는 의료수가 부당 청구 등 불법 행위로 의료생협 이미지에 먹칠을 하기도 했다.
한국의료생활협동조합연대 최봉섭 상임이사는 "우리에게는 외부의 도움 없이 어려움을 극복하며 생협을 지키고 키워온 노하우와 열정이 있다"며 "정부 등의 지원이 더해진다면 의료생협의 외연은 폭발적으로 커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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