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보내주신 서류를 이제 다 봤습니다. 편하실 때 전화주세요. 월요일에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자치위)가 열린다고 하네요."(4월 20일 토요일 오전 10시23분)
"이번 사안과 관련된 모든 아이들에게 집단상담을 준비하려고 해요. 괜찮겠지요?"(4월 21일 일요일 오전 6시15분)
"자치위 결과를 문서로 통보하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어 우편으로 갈 겁니다. 절차를 밟는 것뿐이니 부담 느끼지 마세요." (4월 29일 월요일 오후 7시20분)
서울 중랑구의 한 고등학교에서 생활지도부장을 맡고 있는 송모 교사가 휴일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학부모들에게 보낸 문자들이다. 근무시간이 언제 끝나는 것인지도 구분하기 어려운 과도한 업무와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송 교사는 결국 지난 6월 신경성 위염으로 2개월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 참에 푹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는 대체 강사를 못 구해 학교로 돌아온 후 8월 중순 심한 우울 증세로 다시 병가를 내고 통원 치료를 받는 중이다. 송 교사는 지난 4일 공무원연금공단에 공무상 요양 승인 신청을 냈다.
일이 고되 교사들이 기피하는 생활지도부 교사들이 골병이 들고 있다. 송 교사는 "학부모 상담이 대부분 늦은 시간이나 주말에 이뤄져, 병가를 내기 전까지는 하루도 온전히 쉰 적이 없다"며 "생활지도부 교사는 일하는 기계고, 생지부는 생지옥"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생활지도부 일이 만만치 않은 것이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근 1~2년 새 더욱 몰렸다. 학교폭력 관련 업무만 따져도 예방 활동부터 발생 시 사후 처리까지 224개나 된다. 여기다 교내 흡연 처벌 강화와 서울시교육청의 주요 시책인 교권 강화 정책으로 학생 징계가 크게 늘었고 이에 반발하는 학부모 상담까지 더해졌다. 송 교사가 지난 1학기 중 일과 후와 공휴일에 일한 것만 전화와 문자 상담을 포함, 총 398시간에 달했다. 수업 준비는 할애할 시간이 없을 정도였다. 송 교사는 "지난 학기 교재연구에 들인 시간이 5시간도 안 된다"며 "과연 이런 일들을 하려고 교사를 하는지 괴롭다"고 호소했다.
2년째 생지부장을 맡고 있는 용산구의 한 중학교 오모 교사도 같은 처지다. 그는 "학부모 상담 때문에 수업을 못 들어가고, 교재 연구할 시간이 거의 없다"고 푸념했다. 평생 처음으로 장염을 앓았다는 오 교사는 지난 8월 1박2일 캠프 중 목 디스크 파열로 수술까지 하고, 공무상 요양 승인 신청을 준비 중이다.
생활지도 교사들은 이 같은 질병을 공상(公傷)이라고 입을 모은다. 대구의 한 초등학교 정모 생활지도부장은 "건강하고 젊은데도 4년 연속 생지부장을 하다 십이지장 동맥이 터져 응급차에 실려가고, 혈압이 55까지 떨어지는 죽을 고비를 경험하고나니 과로로 인한 돌연사가 남의 일이 아니란 걸 알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부산의 김모 교사도 "생지부장 4년차 때 눈의 망막이 2번 터지고, 편두통과 수면장애에 시달리다 그만두고 났더니 모든 증세가 없어졌다"며 "직업병 공상이 아니면 무엇이겠느냐"고 토로했다.
송 교사는 "지속가능한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서는 전담부서의 독립, 행정보조인력 지원이 필요하고 수업시수도 감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시교육청은 내년부터 중학교 생활지도부장 또는 학교폭력 책임교사의 수업 시간을 주당 5시간씩 줄여주기로 했다.
권영은기자 yo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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