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러울 것 없는 로펌 변호사 후배와 재판 둘러싼 알력다툼에점차 몰락으로 치닫는 소설양분된 세계에 주인공 자아도 둘 통속적인 현실의 '최요섭'과환상세계 꿈속의 '나'가 교대로 치밀하게 맞물려 전개
이라는 제목에서 대부분의 독자는 장자의 호접몽을 떠올릴 것이다. '내가 꿈에 호랑나비가 되었던 것인지, 호랑나비가 꿈에 내가 되었던 것인지 모르겠다'는 장자의 그 유명한 말을 이 소설은 축어적 의미에서 서사의 건축학으로 삼았다. 꿈과 현실이 균등하게 병치돼 한 차례씩 교대로 등장하는 공정한 전개는 어쩔 수 없이 뫼비우스의 띠라는 식상한 표현을 떠올리게 하며 하나로 맞물리고, 그 띠를 설계해낸 작가의 솜씨가 하도 치밀하고 절묘해 얄밉다는 생각마저 들 지경이다. 갓난아기가 두 팔을 머리 위로 올리고 깊이 자는 잠이라는 '나비잠'의 사전적 정의가 도리어 약육강식의 정글에 내던져진 인간들의 쟁투라는 악몽을 더 끔찍하게 비추는 무섭고도 슬픈 소설이다. 2011년 장편소설 으로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은 최제훈(40)씨가 수상 이후 처음 선보이는 작품이기도 하다.
소설의 주인공은 법무법인 '사해'의 43세 변호사다. 작가는 현실과 꿈이라는 두 개로 양분된 세계에 주인공의 자아 역시 두 개로 나뉘어 투입한다. 주인공은 현실의 서사에서는 '최요섭'이라는 3인칭으로 호명되는 반면 꿈의 서사에서는 '나'의 일인칭을 획득한다.
현실의 최요섭은 위악과 위선을 넘나드는, 속물이라 불러도 억울할 것이 없는 인물이다. 지독히도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일요 주간지의 기사처럼 허구적으로 느껴지는 그의 삶은 그가 다윈의 진화론이 헌법으로 군림하는 세계에서 피 흘리며 싸워 얻은 전리품들로 구성돼 있다. 개척교회 목사인 홀아버지 밑에서 궁핍하게 자라난 그는 '한양대 공대에 다니다 사법고시'로 전향해 합격했지만, '연수원 석차 482등'으로 '오라는 로펌은 없고, 개업할 형편은 안 되고, 사내변호사로 빠지긴 억울해' 갈팡질팡하던 중에 고교 선배의 사무실에 새끼변호사로 들어간다. 사무실이 정치권과 연줄이 닿으면서 국내 10대 로펌으로 성장하는 행운은 개국공신인 그에게 연봉 2억1,500만원, 서울숲과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31억원짜리 60평대 아파트, 아름다운 아내와 야구 꿈나무 아들이라는 생명보험 광고의 주인공 같은 삶을 부여했지만, 그는 자기 스펙으로는 언제든 조직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최요섭의 생존전략은 뒤가 구린 사건을 도맡으며 상부로부터'피 묻은 칼'을 맡겨도 좋을 사람이라는 신임을 얻는 것. 하지만 서울대 법대에 서울중앙지검 출신인 약삭빠른 후배를 견제하기 위해 나섰던 무료변론 선행으로 그는 이 세계의 룰을 어겼다는 낙인이 찍힌다. 유력인사가 배후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유학생 데이트 강간 사건'마저 후배에게 빼앗긴 최요섭은 앙심을 품고 사건 피해자에게 재판에서 이길 수 있도록 비밀리에 도움을 주지만, 이로 인해 그의 삶은 몰락의 파국으로 치닫는다.
너무 현실적인 이야기에서 통속의 기미가 느껴지는 순간이면, 작가는 통속의 찌든 내를 탈취하며 꿈의 환상세계로 서사의 버전을 교체한다. 꿈 속의 나는 '탈옥범'으로 쫓기다가 경찰의 총을 맞지만 메고 있던 은메달이 기적적으로 총알을 막아줘 목숨을 구한다. 피노키오, 빨간 두건부터 돈키호테에 이르기까지 온갖 동화와 소설이 간섭과 변용을 통해 '나'에게 시련과 역경을 부과하지만, '나'는 은메달의 원래 주인을 찾아 어린 시절의 마을로 모험의 여정을 계속한다.
현실의 최요섭은 아내의 불륜, 아들의 중학교 부정입학 폭로, 전 재산을 투자한 대선 작전주 폭락 등 가파르게 이어지는 그의 몰락이 '유학생 사건'의 배후에 의한 음모라고 생각하지만, 꿈은 자꾸만 악행의 기억을 편집, 소거했던 유년의 그 사건 속으로 '나'를 몰고 간다.
"나를 경멸하게 만드는, 내가 해로운 존재라는 자각을 상기시키는 기억은 꼬리뼈처럼 퇴화되기 마련이었다. 살아남는 데 방해가 되니까. 그러다 어느 날 빙판에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는 순간 척추를 관통하는 찌릿한 통증과 함께 떠올리는 것이다. 아, 내게도 꼬리뼈가 있었구나."(335쪽)
음모론이란 "현실보다 더 그럴듯한 작위의 세계"(270쪽)를 통해 몰락의 원인으로서의 자신을 은폐하려는 손쉬운 방편이다. '나는 나를 내 삶의 인과관계의 주체로 복원해야 한다.' 교묘하게 현실과 꿈을 잇는 이 소설이 프로이트의 꿈 이론을 박진감 있게 서사화하며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이것일 것이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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