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0년의 기간 중국의 변모는 정말 드라마틱하다. 시민혁명과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근대 국가로 탈바꿈했고, 냉전체제에선 사회주의권의 주요한 축을 이루다 개혁개방 이후에는 자본주의적 현대화를 수용해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 성장을 기록해 지금은 G2의 반열에까지 올랐다.
산업화에서 소외된 농민의 삶에 관심을 기울이는 윈톄쥔(溫鐵軍) 중국인민대 교수는 이 중국의 현대사를 '백년의 급진'이라고 정리한다. 저자는 중국의 현대는 관개농업을 근간으로 하는 소농경제가 서구식 자본주의적 현대화로 바뀌어가는 과정이었다고 분석한다.
중국은 초기에 민중으로 하여금 무상노동에 가까운 희생을 치르게 하는 총동원체제를 통해 공업화를 위한 자본의 원시적 축적을 완성해냈다. 중국은 근대 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자본의 축적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 부족한 돈 대신 대규모의 잉여노동력을 투입했다. 노동력을 투입하는 데 동원한 것이 다름 아닌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였다.
그는 외자가 유입되는 단계에서 구조적으로 발생되는 인플레이션과 실업문제 등의 경제위기가 중국에서 8번 있었는데, 매번 위기들을 극복할 수 있었던 건 방대한 중국 농촌의 완충능력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지식청년으로 불리는 수천만 명의 젊은이들이 마오쩌둥의 손짓 하나로 농촌으로 하방했던 '상산하향(上山下鄕)' 운동 등으로 구조적인 실업의 위기를 농촌이 고스란히 떠안은 것이다.
저자는 앞으로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중국사회 안정의 열쇠로 농촌과 농민, 농업을 묶은 '삼농(三農)'을 강조한다. 중국에서 농지는 단순히 처분 가능한 생산요소가 아니라 도시로 돈을 벌러 떠나는 이른바 농민공들에게조차 도시에서 일자리를 잃을 경우 돌아와 생계를 이어갈 수 있게 해주는 최후의 보루이자 사회보장의 대체재 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그는 강연 때마다 "인구 1억 이상의 개발도상국 가운데 대도시 근교에 대규모 빈민굴을 형성하지 않은 사례는 중국이 유일하다"고 말해왔다.
북한의 식량위기를 바라보는 그의 독특한 시각인 '김정일 딜레마'도 비슷한 맥락이다. 북한 농업의 붕괴는 농업 현대화의 지연 때문이 아니라 구소련에서 도입한 6만 대의 트랙터로 대표되는 농업기계화에 과도하게 의존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북한 전체 인구 30% 미만의 농촌 인구가 70%의 도시 인구를 부양해야 하는 도시화의 급속한 진전 속에서 구소련의 해체로 인해 농기계 부품과 에너지 공급이 중단됐을 때 북한은 그야말로 속수무책의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북한의 현장을 둘러본 저자의 주장이다.
자신 또한 1968년 가족과 뿔뿔히 헤어져 하방했던 지청으로서, 중국 산업화 과정의 부담을 고스란히 짊어졌던 6억 농민을 향한 그의 시선엔 애정이 넘친다. "중대한 전환이나 변화가 발생했을 때마다 서양이나 도시에서 답을 찾을 게 아니라 초야와 농촌에서 해답을 구하는 것이 옳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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