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유명한 영문학 교수였다. 사랑을 백 가지 표현으로 말할 수 있는 언어의 연금술사였다. 언어가 삶의 거의 전부였던 그에게 비극이 찾아왔다. 뇌졸중으로 중증 실어증에 걸린 것이다.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타인의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 말을 하려 애쓸수록 단어들은 달아났다. 그가 절망의 한복판에서 반복적으로 소리쳤다. "멤, 멤, 멤!"
은 인간의 6가지 감각의 기원과 진화를 탐구한 의 저자 다이앤 애커먼이 작가이자 비평가인 남편 폴 웨스트를 5년간 간병하며 겪은 것을 담은 의학서이자 에세이인 동시에 사랑에 관한 긴 이야기다. 뇌와 관련한 의학 지식이 아름다운 사랑의 언어와 손을 잡고 빙그르르 왈츠를 춘다.
분노와 좌절을 오가는 실어증 환자와 씨름하면서도 애커먼은 절망의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는다. 그녀는 기꺼이 뇌 질환과 싸우는 전사가 되기로 한다. 우선 실어증에 관해 최대한 많은 정보를 끌어 모은다. 그리고 남편의 찬란한 어휘력과 지성을 되찾아줄 수 있는 언어 치료법을 고안해 그 과정을 꼼꼼히 기록한다. 기적은 시나브로 부부에게 찾아왔다. 웨스트의 머릿속에서 사라진 단어가 다시 돌아오고, 조각 나 제멋대로 나뒹굴던 문장들이 모양을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첫 장부터 마지막 에필로그까지 행간을 가득 채우는 것은 '사랑'이다. 웨스트에게 언어를 돌려준 것도 '백 가지 이름의 사랑'이다. 낙관적이고 희망적인 애커먼의 감수성 덕에 책장의 무게는 한결 가볍게 느껴진다.
에필로그에서 그녀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혼자 긴 시간을 살아야 하더라도 괜찮을 것이라고 혼잣말을 한다. 웨스트에 대한 애커먼의 무한한 사랑이 꽤나 감동적이다. '이상하게도, 온갖 걱정, 두려움,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이 나날들을 내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날들 중 일부로 돌아보게 될 테지. 왜냐하면 나는 진정으로 사랑했고 똑같이 사랑으로 보답 받았다고 느낄 것이기 때문이야.'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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