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파고스 제도(諸島)는 남미 에콰도르에서 서쪽으로 900㎞ 떨어진 19개의 화산섬과 주변 암초로 이뤄진 섬 무리이다. 1835년 찰스 다윈은 탐사선 비글호를 타고 외딴섬 갈라파고스섬에 발을 디뎠다. 육지와 격리돼 생물들이 독특하게 진화한 코끼리거북이를 비롯해 희귀한 동식물이 숱했던 이곳을 방문한 경험에서 다윈은 진화의 신비를 발견했고, 불후의 고전 을 저술했다.
만약 갈라파고스섬에 철학자가 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것도 지금과 같은 생명 위기의 시대라면. 어쩌면 그 역시 생명의 눈으로 철학적 사유를 전개하지 않았을까. 철학박사이자 녹색환경운동가인 저자는 "철학이 생명 위기의 시대에 나침반이 되고 지도가 된다면 얼마나 흥미진진할까"라는 생각에서 실마리를 풀어나갔다. 저자는 플라톤과 데카르트, 칸트, 홉스, 니체, 푸코, 프로이트, 마르크스 등 주요 철학자부터 피터 싱어, 미레이 북친, 들뢰즈ㆍ가타리 등 생태주의 철학자까지 모두 18명의 철학자들의 주요 사상과 개념 속에서 '녹색 철학'의 키워드를 찾아 생명 위기의 해결점을 찾아나갔다. 한마디로 녹색의 눈으로 철학사를 재구성한 '철학의 생태지도'를 만들려는 것이다.
저자는 폐쇄된 동물실험실 환경에서 플라톤의 '형상(이데아)'을 떠올린다. 동물실험실은 데이터를 얻기에 가장 이상적인 이데아 공간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데아를 꿈꾸는 것을 이상사회라고 하지만, 인공적인 이데아 세상이 만들어냈던 것은 동물들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곳의 체험일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공장식 축산업에서 동물을 '고기를 생산하는 기계'처럼 간주하는 태도를 데카르트의 '자동기계' 개념으로 그 기원을 추적한다. 라이프니츠의 '단자론'을 통해 동물복지와 동물권에 어떠한 근본적인 관점의 차이가 있는지, 피터 싱어의 '공리주의'를 통해 생물종 간 차이와 차별의 문제를 고찰한다.
녹색의 눈으로 철학자의 사상과 개념을 바라보는 과정을 통해 저자는 "진정한 철학이란 앵무새처럼 기존 철학자들의 개념과 사상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생생한 삶 속에서 자기만의 눈으로 철학적 사유를 스스로 전개해 나가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진짜 '철학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철학의 나침반이라고 할 수 있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