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약 11일 정도에 걸쳐서 시간제 고용과 관련하여 영국과 네덜란드의 기업, 공공기관, 노조, 전문학자, 컨설팅 기관의 관계자들을 인터뷰하고 돌아왔다. 모처럼 시간제 고용의 고용형태, 전일제와의 차별적 대우 여부, 전일제에서 시간제로의 전환과 역전환 여부, 그리고 기업이나 공공부문에서의 비용과 불편함의 문제, 일ㆍ생활 균형을 위한 활용 등 우리가 궁금해 하던 세부적인 문제들을 두루 묻고, 또 캐물었다. 인터뷰를 통해 그들 관계자들의 공식적인 답변 이외에도 솔직한 실태와 관행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간략하게 정리하면, 영국과 네덜란드에서 공공부문(지방정부, 학교, 병원)에서의 시간제 고용은 그야말로 시간에 비례하여 거의 모든 대우가 차별 없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양질의 시간제 고용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여성들의 일ㆍ생활 균형을 위해 잘 활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민간부문에서의 시간제 고용은 좀 달랐다. 영국 민간부문의 경우 전일제 고용에서 시간제 고용으로 전환을 한 경우 종종 기존 일자리에서 밀려나 좀 더 단순하거나 책임성이 덜한 다른 일자리에 배정되거나 혹은 아예 직장을 그만두고 시간제 일자리를 다시 찾아야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 경우 일자리의 질이 더욱 하락하였다. 물론 영국의 민간부문에서도 전일제 고용에서 시간제 고용으로 전환을 한 뒤에도 기존의 일자리를 유지하면서 근무하는 경우가 적지는 않았다. 다양한 연구들에 의하면, 영국의 민간부문에서 처음부터 시간제 일자리에 채용된 경우에는 일자리의 질이 좋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네덜란드의 경우에는 민간부문의 경우에도 전일제에서 시간제 일자리로 전환한 경우도 많았거니와 그 경우에도 영국과 달리 기존 일자리를 바꾸거나 해야 하는 경우는 없었고, 일자리의 질과 대우가 공공부문과 마찬가지로 보장되고 있었다. 다만, 네덜란드 민간부문의 경우에도 관리직들은 시간제 일자리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민간부문에 종사하는 남성관리직들도 주 기본근로시간이 36시간인 경우에는 1일 9시간 근무 주4일제를 하는 경우나 혹은 격주로 '아빠의 날'인 수요일을 하루 쉬는 경우는 많았다. 그런데 네덜란드에서도 1980년대 이전에는 시간제 일자리의 질이 나빴으나 1983년 은행에서 노사합의로 전일제를 시간제로 전환하는 단체협약을 체결하면서 기존의 나쁜 시간제 고용과 질적으로 구분되는 양질의 시간제 고용이 크게 늘어날 수 있었다. 노사가 합의하여 전일제와 차별 받지 않는 양질의 시간제를 도입, 보장하고 실제로 공공기관과 기업들에서 양질의 시간제 고용이 확산된 뒤에 정부가 사후적으로 법으로 시간제 고용을 전일제와 비교하여 차별을 금지한 것이다. 정부와 노사가 협력하여 원래 있던 질이 나쁜 시간제 일자리와 구분되는 양질의 일자리를 성공적으로 도입한 것이다. 영국과 네덜란드 모두에서 양질의 시간제 고용은 노동시간이 보통 24시간 이상 되는 '긴' 시간제 일자리였다. 시간제 고용 가운데 근무시간이 짧은 '주변적 시간제 고용'은 전형적으로 일자리의 질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네덜란드에도 고민은 있었다. 여성들이 시간제 고용에 익숙해서 네덜란드가 경기가 좋을 때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시간제 고용 여성들이 노동시간을 늘리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여성계에서는 남녀간에 남성 전일제, 여성 시간제라는 남녀간의 성별분업을 고착화시킨다는 비판을 하고 있다.
두 나라의 시간제 고용경험과 관련하여 우리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시간제 고용은 정부와 노사가 잘 운영하면 양질의 시간제 고용을 만들 수 있으나, 시장에 내버려두는 경우 나쁜 질의 시간제 고용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또한 여성들의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및 일ㆍ생활 균형과 관련하여 네덜란드가 스웨덴에서 배우고자 하는 점이 보육서비스 특히 공공보육서비스를 늘려야 여성들이 질이 낮은 짧고 시간제일자리가 아니라 양질의 긴 시간제 일자리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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