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작가도 이렇게 짧은 분량 안에 이렇게 많은 것들을 담아내지는 못할 것이다. 그의 정교한 문장들은 평범한 표면 아래 풍부한 광맥을 숨기고 있다."(시카고 트리뷴)
"장편소설 작가들이 평생에 걸쳐 이룩하는 깊이와 통찰, 정확성을 단편소설을 통해 매 작품마다 성취해 왔다."(맨부커위원회)
캐나다에 첫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소설가 앨리스 먼로(82)는 '우리 시대의 안톤 체호프'로 불리는 단편소설의 여제다. 장편소설을 압축해 놓은 듯한 짧은 이야기마다 섬세한 관찰력과 탁월한 구성이 빛나고, 서사의 힘이 번득인다. 우연한 상황과 찰나의 선택에 의해 한 인간이 완전히 변화하는 순간을 정확하고 간결한 문장으로 포착해내는 그의 단편들은 우리의 평범한 삶이 실상은 전혀 평범하지 않으며 기이하고 위태로운 기반 위에서 휘청거리고 있음을 묘파해 왔다. 익히 알다시피 단편소설은 장편소설보다는 시와 더 큰 친연성을 가진 경계의 장르. 스웨덴 한림원이 노벨상 수상자로 그의 이름을 지목한 것은 그가 현대 단편소설의 거장이라는 평가에 걸맞게 이 장르가 이룩할 수 있는 최고의 성취를 보여준 바로 이 공로 때문이다.
1931년 캐나다 온타리오의 시골 마을 윙엄에서 태어난 먼로는 시골 학교 교사인 어머니와 여우농장을 운영하는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다. 11세에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 이래 지금까지 한번도 흔들리지 않은 이 뚝심의 작가는 1949년 웨스턴오하이오대학교에 입학, 영문학과 저널리즘을 공부하다 1951년 대학에서 만난 제임스 먼로와 결혼하면서 학업을 작파했다. 1963년 밴쿠버 인근의 빅토리아로 이주한 부부는 '먼로스 북스'라는 서점을 냈고, 이 서점은 1972년 이혼으로 앨리스 먼로가 떠난 이후 현재까지도 북미 최고의 서점으로 인정 받으며 운영 중이다. 먼로는 4년 후 재혼했다.
11세에 글쓰기를 시작한 이래 공식적인 첫 작품은 대학 시절 발표한 단편 '그림자의 세계'지만, 그의 첫 소설집은 1968년에야 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하지만 첫 책이 나오자마자 캐나다 최고 권위의 문학상 중 하나인 총독문학상을 받으며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 등의 작품을 발표하며 영어권을 대표하는 단편소설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먼로는 이후 (1978)와 (1986)가 또 다시 총독문학상을 받으며 이 상을 세 차례나 수상한 기록을 세웠다. (1998)과 (2004)으로 두 차례 길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캐나다뿐 아니라 미국에서도 전미비평가협회상, 오헨리상, 펜/맬러머드상 등을 받았으며, 2009년에는 맨 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했다.
매년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돼온 먼로는 지난해 열 세 번째 단편집 를 발표하며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 "아마 더 이상 작품을 쓰지 않을 것"이라며 사실상 은퇴를 선언했다. 2009년 암과 심장 질환으로 치료 중이라고 밝힌 그의 마지막 작품 는 "오랜 커리어의 절정" "작가로서의 능력이 최고조로 발휘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먼로는 그의 작품 속 인물들처럼 겸손하고 나대지 않는 성격으로도 유명하다. "내가 작가로 성공한 것은 다른 재능이 없었기 때문"이라며 "나는 지식인도 아니고 잘난 것도 없는 평범한 주부"라고 말한 바 있다. 작품 속에는 따스함과 연민의 정조가 흐르고, 분노와 슬픔의 감정 역시 그의 성격답게 날 것 그대로가 아닌 절제된 시적 형태로 나타난다.
여성을 위해 여성에 관해 쓰지만 남성을 악마화하지 않는 것도 그의 특징이다. 그가 사는 캐나다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심리적 리얼리즘이라 일컬을 만큼 섬세하게 조율된 스토리텔링을 선보여온 그는 일상적이지만 결정적인 사건들을 통해 인간 조건의 허약함과 삶의 의미가 섬광처럼 드러나는 에피파니(현현)의 순간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데 주력해왔다. 그는 2010년 한 인터뷰에서 "주제에 있어서 크고 작음이란 없다"며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가 아니라 그 모든 일이 일어나는 방식으로 독자를 놀라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문학평론가 황종연 동국대 교수는 "단편소설은 장대한 스케일도, 모험도, 로맨스도 없는 제약이 많은 장르"라며 "체호프란 별명이 아깝지 않은 이 독보적 단편작가는 평범한 인간 세계 속에서 경이로운 것들을 포착해내는, 단편 쓰기에 가장 필요한 자질을 갖췄다"고 평가했다.
먼로는 현재 온타리오 남서부 도시 클린턴에 거주하고 있다. 한밤중에 자다가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들은 그는 "당선권 안에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내가 수상자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고 캐나다 언론이 전했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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