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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10월 11일] 과학은 죽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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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10월 11일] 과학은 죽었는가

입력
2013.10.10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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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송전탑 건설공사가 재개된 지 일주일이 넘었다. 말이 공사지, 경찰 20개 중대, 2,000여명이 교대로 공사에 반대하는 지역주민, 환경단체와 정당 등 외부 지원세력을 가로막은 가운데 펼쳐져 '작전'에 가깝다. 물리적 충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실제로 몸싸움과 오물 투척 등의 불상사도 잇따르고 있다.

이번 사태를 보는 시각은 크게 엇갈린다. 수도권 주민 등 다른 지역 주민이나 여야 정당의 의견이 갈린 것은 물론이고, 같은 밀양 시민도 뜻이 서로 다르다. 어제 환경단체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6.1%가 현지 주민의 공사 반대에 일리가 있다고 보았다. 한국전력이 5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9.6%가 송전탑 공사에 찬성한다고 밝힌 것과는 정반대다. 한전의 여론조사에서는 밀양 시민들도 찬성 50.7%, 반대 30.9%의 의견을 보였다. 통계적 진실을 객관적으로 드러낸다는 여론조사조차 이처럼 널을 뛰는 마당이니 마땅한 판단의 잣대를 찾기가 쉽지 않다.

다만 양측의 여론조사는 송전탑 건설로 가설될 765㎸ 송전선로 가까이에 집과 경작지 등 삶의 터전을 둔 주민들의 건강 불안이 밀양 사태의 출발점이자 핵심임을 시사한다. 한전의 여론조사는 전자파의 위해성 여부에 대한 인식은 일절 물어보지 않은 대신 외부단체 개입, 공권력 투입, 추가 보상 법제화 등을 물었다. 반면 환경단체의 여론조사는 전자파의 위해성 인식을 자극하면서 이뤄졌다. 즉, 응답자의 84.9%가 '전자파가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믿고, 62.9%가 '고압 송전선로의 전자파가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세계보건기구(WHO)의 발표에 대해 알고 있었다.

일반 국민의 의식이 이 정도라면, 직접 당사자인 현지 주민, 특히 송전선로 가까이에 삶의 터전을 둔 주민들의 우려는 말할 것도 없다. 수많은 국책사업이 뒤뚱거리고, 천성산 터널에서 보듯 환경피해 우려가 과장되기 쉽다는 경험에서 외부세력의 선동이나 지역이기주의, 보상 문제 등을 사태의 본질로 여기는 사람들조차도 무시하기 어려운 사태의 출발점이자 핵심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핵심 요소에 대한 진지한 과학적 검토의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한전이나 반대단체가 각각 '제법 과학적'인 주장을 내 놓기는 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과학의 이름으로 행해진 숱한 주장이 과학의 대척점인 가치나 허위 의식으로서의 이데올로기에 감염돼 왔듯, 현재의 밀양 사태를 둘러싼 과학적 주장도 한국사회 고질의 진영논리에 감염된 흔적이 짙다. 과학이 실험실 밖에 나서는 순간 어느 정도의 '가치 감염'은 불가피하다 하더라도 이건 좀 심하다 싶다.

전자파의 유해성 논란만 해도 그렇다. 전자레인지나 휴대폰에 쓰이는 고주파(초단파)의 유해성은 간단하다. 주파수가 비슷한 인체 내 물의 분자공명을 부르고, 그에 따른 미세한 발열이 열에 약한 뇌나 고환의 정상 기능을 방해할 수 있다. 이와 달리 고압 송전선의 저주파(60Hz)가 인체에 악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은 유도자기장에 의한 것이다. 저주파 자기장이 인체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실험주체에 따라 수시로 바뀌어왔다. 위에 언급한 'WHO 발표'의 실상도 암을 유발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2급 물질' 가운데서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2B 물질'이다. 그 위험성을 DDT와 비슷하다거나 커피와 비슷하다는 주장은 각각 한쪽의 선입견만 드러낸다. 송전선로의 유도자기장 세기가 전압이 아닌 전류에 비례하고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또 자기장 안에서 나무토막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지만 자성을 띤 금속은 커다란 영향을 받듯, 자기장의 세기를 나타내는 자속밀도는 다른 농도나 힘처럼 숫자만으로 곧바로 비교하기가 어렵다.

이런 기본적 물음이 해소되지 않은 채 극단적 대결로 치닫고 있다는 점에서 밀양사태는 과학의 상직적 죽음을 일깨운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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