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전탑 건설 갈등으로 지금도 주민반대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밀양, 평화로웠던 해변마을이 해군기지 건설 때문에 갈갈이 찢어진 제주 강정마을, 방사성폐기물처리장 유치를 놓고 같은 군(郡)안에서 섬사람과 육지사람이 갈렸고 유혈폭동까지 빚어졌던 전북 부안, 미군기지 이전 때문에 삶의 터전에서 강제철거까지 겪어야 했던 평택, 그리고 방조제 짓는 데 무려 20년 넘는 세월이 걸린 새만금까지.
국책사업을 둘러싼 갈등사례의 원인을 찾아 들어가다 보면 한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D→A→D'라 불리는 정부의 국책사업 추진 '매뉴얼'이다. 일단 은밀하게 결정(decide)하고, 그 다음 국민들에게 공개(announce)하며, 강하게 밀어붙이다가 반대가 나오면 그 때가서 방어(defend)하는 국책사업 추진스타일은 수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따지고 보면 거센 후폭풍에 휩싸인 4대강 사업도 '토건(土建) 정부' 특유의 불도저식 밀어붙이기에서 문제의 원인이 나온다. '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던 이명박 대통령은 여론의 반대가 거세지자, 대운하 대신 4대강 사업을 들고 나왔다. '변형된 대운하'의혹이 있었지만, 4대강의 정비 필요성은 오래 전부터 제기되었던 터라 운하만큼 반대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임기 내 완공하려는 속도전이 문제였다. 국토의 젖줄을 다시 그리는 대역사인 만큼, 강이 흐르는 지역 얘기도 듣고 특히 환경전문가 견해를 충분히 들었어야 함에도, 정부는 모든 게 일방통행이었다. 예산심의를 거치지 않은 채 공기업(수자원공사) 재원으로 착공에 들어갔고, 반드시 거쳐야 하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피하고자 예외조항까지 만들었다. 속도전을 펴다 보니 공사추진과정에서도 무리수가 잇따랐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감사원 감사 결과, 4대강 사업은 환경훼손, 부실공사, 공사비리로 얼룩진 총체적 부실사업으로 드러났다. 한 정부 관계자는 "강 하나씩, 환경을 따지면서 한 10년에 걸쳐 추진했다면 4대강 사업은 훨씬 더 좋은 그림이 그려졌을 것"이라며 "하지만 지난 정부에선 그런 얘기를 꺼낼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사실 국책사업을 둘러싼 갈등은 오래 전에도 있었다. 1968년 경부고속도로 착공 당시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논밭을 강제수용 당하게 된 각 지역 주민들은 '결사반대'피켓을 들고 공사차량 앞에 드러눕는 격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경부고속도로가 없었다면 우리나라 경제발전이 가능했겠나. 과정에 잡음이 있어도 결과가 좋으면 결국 좋은 것"이란 인식이 대형국책사업을 추진하는 정부인사들 뇌리에 강하게 박히게 된 것이다.
문제는 반대의 질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민주화, 지방화, 다원화의 정도는 그 당시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진척됐다. 주민들의 재산권보호경향은 훨씬 강해졌고, 환경에 대한 인식은 훨씬 높아졌으며, 같은 지역 같은 마을 안에서도 더 이상 통일된 의견을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은 상태다. 그런데도 정부는 30년전 프레임으로 밀어붙이다 보니, 곳곳에서 파열음이 생기고 결국 시간과 비용만 천문학적으로 불어나게 된 것이다.
한 전직 고위관료는 "밀양송전탑의 경우 사업착수 8년이 흘렀다. 만약 초반에 여론수렴과 설득에 더 많은 시간과 수고를 들였다면 3~4년 안에 끝냈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새만금 방조제도 구상단계까지 포함하면 무려 20년이 소요됐는데 이 역시 환경문제에 좀더 관심을 갖고 접근했다면 훨씬 일찍 완공하고 돈도 절반밖에는 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때 정부차원에서 국책사업 등 대형갈등을 예방ㆍ관리하는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노무현정부는 ▦부처별로 갈등관리위원회를 설치하고 ▦갈등유발이 예상되는 사업은 추진 단계부터 갈등영향 분석 등을 도입하는 내용의 갈등관리기본법을 2005년 국회에 제출했지만 통과되지 못했고, 결국 시행령으로 대체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이명박정부는 전혀 관심조차 없었고, 갈등관리시스템은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정부의 인식전환, 즉 '국책사업은 선(善), 반대는 악(惡)'이란 이분법부터 버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은재호 한국행정연구원 사회통합연구실장은 "낡은 D-A-D의 틀을 버리고, 참여하고 숙고한 다음 결정하는 E-D-D(Engage- Deliberate- Decide) 방식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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