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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학자 이윤재 서거 70주년 맞아 전기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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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학자 이윤재 서거 70주년 맞아 전기 출간

입력
2013.10.09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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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중 순국한 국어학자이자 역사학자 환산(桓山) 이윤재(李允宰·1888∼1943)의 전기 가 출간됐다.

한글학회 연구위원이자 이극로연구소장인 박용규(50) 박사가 서거 70주년을 맞아 환산의 업적을 소개한 책으로 남북한을 통틀어 이번이 처음이다.

전기에는 환산이 “그것은(조선독립은) 강탈당한 물건을 되돌려 받는 것과 같다”고 일제 재판부를 통박한 것, 1922년 6월에 안창호의 흥사단에 가입한 것, 경신학교 교원이었던 1933년에 제자들에게 조선의 독립을 예견한 것, 자신의 집을 조선어학회 회관 건립 부지로 내놓은 것 등 새로운 사실들을 담았다.

1888년 경남 김해에서 태어난 환산은 대구 계성학교에서 공부하고 평북 영변에 있는 숭덕학교에서 교사로 재직 중에 3·1운동에 가담해 1년6개월간 복역했다. 출옥 후 중국으로 망명한 그는 단재 신채호의 영향으로 중국 베이징대 사학과에서 근대 역사학을 공부했다.

1923년 여름 귀국한 환산은 조선어학회 기관지인 ‘한글’을 창간해 편집을 주도했고, 식민사학에 대항하기 위해 창립된 진단학회에 가입했다. 그는 조선어학회 동료들과 함께 한글맞춤법을 통일하고 표준어를 사정하고 조선어사전을 편찬하는 등 한글 보급을 통한 민족운동에 몰두했다.

환산은 1942년 이른바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10월 1일 회원들과 함께 체포돼 함흥형무소에 수감됐고, 일제의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1943년 12월8일 56세를 일기로 순국했다. 정부는 환산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박용규 박사는 “환산이 민족주의 역사가였다는 사실을 최초로 밝혔다”며 “그의 반일 민족주의 역사인식은 일제에 의해 발매 금지 처분된 (1931)에 잘 드러나 있다”고 말했다.

장재용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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