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연주자에게 청중의 환호가 온통 쏠리는 현대 클래식 음악계에서 작곡가로 사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프랑스의 현존하는 가장 중요한 작곡가 중 한 사람으로, 드뷔시와 메시앙, 뒤티외와 불레즈 등 위대한 프랑스 작곡가의 계보를 잇고 있는 트리스탕 뮈라이(66)에 따르면 "작곡가란 본디 인내심을 가져야 하는 직업"이다. "공연 포스터나 음반 표지를 보면 우습게도 작곡가의 이름은 온데간데 없이 '지휘자 카라얀의 교향곡 5번'이라고 큼지막하게 쓰여 있죠. 위대한 작곡가 베토벤의 현악사중주곡도 초연 당시에는 반응이 엇갈렸었고."
11일 서울시립교향악단의 현대음악 시리즈 '아르스 노바'를 통해 피아노 협주곡 '세계의 탈주술화'를 아시아 초연하게 돼 9일 방한한 그는 "내게 음악의 정의는 새로운 것을 발견해 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좋은 귀를 타고나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배웠지만 반복적인 음계 연습 대신 즉흥연주에 빠져들었죠. 나만의 새로운 화음을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았어요. 대중을 예측할 수 없고 내 음악이 어떻게 전달되는지 확신할 수 없는 게 작곡가의 숙명이지만 나는 늘 우선적으로 울림이 풍부한 음악을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세계의 탈주술화'는 서울시향이 뉴욕 필하모닉,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무지카 비바와 공동 위촉한 곡으로 지난해 5월 독일 뮌헨을 시작으로 암스테르담, 뉴욕, 바르샤바에서 공연돼 좋은 반응을 얻었다. 제목은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가 사용한 개념에서 따 왔다. 그는 "현대 인류가 종교와 신화 등 마법적인 수단에서 벗어나 스스로 진리와 행복으로 가는 방법과 목적을 찾는 것처럼 음악의 여러 기술적 요소 그 자체가 결국 하나의 분위기와 톤으로 귀결되는 곡을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관현악적인 접근 방식으로 피아노 협주곡을 썼던 작곡가 리스트에게서 영감을 얻어 피아노와 오케스트라가 협업하는 형식의 곡을 썼다"고 한다.
미국 콜럼비아대 교수를 거쳐 2011년부터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테움 작곡과 교수로 재직 중인 뮈라이는 20세기 이후 음악계에 큰 영향력을 발휘한 프랑스의 '스펙트럼 음악'을 처음 시도한 대표적인 작곡가다. 스펙트럼 음악은 선율도 화성도 없는 무조음악인 음렬주의에 대한 반발로 시작된 것으로 소리의 특성과 청중의 반응을 모두 고려한 작법이다. 따라서 전자음악을 활용한 다양한 음색의 과학적 분석에 기초하면서도 화음도 만들어 내기 때문에 독일로 대표되는 무조의 현대음악과 비교해 자연스럽게 들리는 게 특징이다.
그는 특히 "최근 10~15년 간은 소리의 구조보다 음악의 심리적 특성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 왔다"며 "전체적으로 일관된 분위기를 강조한 이번 피아노협주곡은 '스펙트럼 음악의 진화'라 할 만하다"고 말했다. "현대음악이든 또 다른 어떤 시기의 음악이든 중요한 것은 음악이라는 추상적 언어가 내 감정을 얼마나 전달할 수 있느냐죠. 음악은 미술, 문학 등 다른 예술 장르와 달리 한 순간 존재하는 공기의 진동에 불과해요. 그래서 등장인물이 있는 연극처럼 내 음악이 하나로 흘러가는 연결성을 갖도록 신경을 씁니다."
그는 파리 고등국립음악원에서 올리비에 메시앙과 작곡, 아랍어와 경제학, 정치학을 함께 공부했다. 음악만이 아닌 세계를 좀 더 깊이 이해하게 된 교육적 배경이지만 그 중에서도 외국어의 호기심은 남달랐다. "라틴계가 아닌 완전히 새로운 언어인 아랍어를 배우면서 사람의 심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인터뷰 내내 인간 심리를 강조했다. 10일에 참석할 젊은 작곡가 대상 세미나에 대해서도 "작곡 교과서에는 화음, 스케일 등 기술적인 부분만 나와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조언을 주는 일종의 심리 상담 성격을 띠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거장 작곡가에게 음악의 사회적 역할을 묻는 우문을 던지자 "음악은 우리 그 자체"라는 현답이 돌아왔다. "음악의 역할이나 기능은 뭔지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음악은 수천 년 전부터 존재한 인간의 일부이기 때문에 음악이 없다면 우리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조차 어렵네요."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