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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10월 10일] 시험대 오른 박근혜 외교

입력
2013.10.09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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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관계에 관심 있는 일본 국민들은 그제 아침 신문에 실린 사진을 보고 흠칫했을 것같다. 아, 이것이 말로만 듣던 '얼음공주'의 모습이라고 짐작하지 않았을까 싶다. 아시아ㆍ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담장에서 아베 신조 총리 옆에 앉은 박근혜 대통령의 표정에는 정말 차디찬 냉기만 가득했다. 아베 총리 등 일본 극우 지도자들에게 과거사에 대한 자신의 단호한 의지를 작심하고 보여주려는 듯 박 대통령은 결연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반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 사진에서는 호의적인 온기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양국을 둘러싼 정치ㆍ외교적 현실, 날로 확대되는 교역 규모 등 외부 요인 외에도 권력자의 집안에서 성장하다 불운한 시절을 겪은 배경과 경험 그리고 나이-박 대통령은 52년생, 시 주석은 53년생-까지 비슷하니 정서적 유대감이 깊으리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 극단의 대비를 이룬 사진은 속시원함이나 든든함보다는 걱정부터 들게 한다. 북한의 맹방 중국과의 우호적 관계가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지, 얼어붙은 일본과의 관계를 풀 묘수는 있는지 등 온갖 의문을 떠올리게 한 두 사진은 우리의 고단한 외교 현실을 보여준다. 그런 의문과 현실을 꿰맞춰 가다 보면 결국 만나게 되는 나라가 미국이다.

최근 미국의 행보는 국익을 위해서라면 자존심쯤 접을 수 있다는 실리 외교의 전형을 보여준다. 도쿄에서 열린 미일 외교ㆍ국방장관(2+2) 회담에서 풀어놓은 미국의 푸짐한 선물보따리가 대표적이다. 미국은 아베 총리가 추진하는 집단자위권 행사 용인을 위한 헌법해석 변경에 환영 입장을 나타냈고, 17년 만에 미일 방위협력 지침을 개정키로 했다. 그밖의 합의도 대부분 일본의 군사력 강화를 지원하는 것들이다. 미일 신밀월 시대라고 해도 무방해 보인다. 센카쿠(댜오위다오) 분쟁 등 중국의 해양 진출 야욕과 북한의 핵ㆍ미사일 위협에 대응한다는 명분 아래 군사대국화를 도모해온 아베 정권으로서는 미국의 용인이 필요했다. 재정적자 때문에 10년간 국방예산을 계속 줄여야 하는 미국으로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일본의 협조가 절실했다. 미일 2+2 회담은 양국의 이해가 제대로 맞아떨어진 결과다.

미국은 입버릇처럼 한미일 3각 안보동맹 관계의 강화를 강조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일본의 군사력 강화를 경계하고 비판하는 우리 입장이 달가울리 없다. 미국의 재정부담을 덜어주고 중국의 팽창주의도 견제해주겠다는, 그래서 미국으로선 '고마운'일본에게 한국이 어깃장을 놓는 것처럼 비치기 때문이다. 척 헤이글 미 국방장관이 박 대통령에게 "한미일 안보관계를 구축함에 있어 한일 간 역사적 문제 등 현실 문제가 잘 관리돼야 한다"고 한 것은 미국과 지역 안보를 위해 조속한 한일 관계 정상화를 요구한 것에 다름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미국의 이 같은 압박에 대응할 카드가 많지 않다는데 있다. 최근에는 우리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재연기를 미국에 거듭 요청하고 있는 마당이니 더욱 그렇다. 미국이 오랜 안보ㆍ경제 동맹국으로서, 전작권 재연기를 지렛대 삼아 한국의 미국 미사일방어(MD) 체계 편입,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율 인상, 미국산 무기 구매 압력 등 다양한 부가이득을 챙기려 할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온다. 게다가 미국은 일본과 함께 추진 중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까지 바라고 있다. 이런 마당에 미국과 갈등하는 중국과 밀착하고 미국과 가까워진 일본과 단절하다시피 하는 외교 전략을 계속 유지해야 하는지를 놓고 박 대통령과 정부의 고민이 깊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중국과의 협력 강화, 일본과의 관계 개선 불가 입장을 선명하게 내세울수록 종국에는 우리 외교의 입지만 좁아질 거라는 점이다.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한국 입장에서 보면 괜한 우려가 아닐 것이다. 대통령이 일본을 향해 냉기를 뿜고 중국에 미소를 보내는 것이 국민 정서와 경제 현실에 부합할 순 있겠지만 그것이 국가 전체 이익의 극대화를 위한 최선의 방책인지는 점검해볼 필요가 있겠다.

황상진 편집국 부국장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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