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학사 교과서 문제는…식민지 통해 근대화 관점 투영일제강점기 미화하고의도적으로 수탈·만행 축소● '8·15 건국절' 주장에 대해…이승만 '민국 30년' 연호 사용대한민국 시작 1919년으로 봐뉴라이트 시각 헌법정신 배치● 교과서 자학사관 주장에 대해…위안부 왜곡하는 日 전철 밟는 꼴자학사관 운운은 역사의식 결여후세에 부정적인 면도 가르쳐야
"이명박 정권에서 국사편찬위원장 데려다가 건국 60주년 타당성을 말하도록 하면서 국편은 정권이 필요로 하면 역사적인 이데올로기를 제공해주는 기관처럼 돼버렸다. 이번 교과서 검정도 그렇게 국편이 권력에 예속된 결과로 볼 수 있다."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낸 이만열(75) 숙명여대 명예교수는 9일 "신임 유영익 위원장도 지금까지 자신에 대한 비판 같은 걸 감안해서 국편이 더 이상 정권 논리에 맞추는 것을 극복해야 할 책임이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한국 근대사를 전공한 이 전 위원장은 숱한 사실 오류와 이승만에 대한 과도한 기술 등으로 비판 받는 교학사 고교 교과서에 대해 "뉴라이트의 식민지 근대화론에 충실하려다 보니 의도적인 축소, 과장, 누락 등이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이 전 위원장을 서울 종로구 필운동 자택에서 만나 교학사 교과서의 문제와 국편 신임 위원장 임명 논란 등에 대해 들었다.
-교학사 교과서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그 교과서에는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역사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 사관의 문제와 사실 오류다. 뉴라이트의 식민지 근대화론에 의지하다 보니 자연히 일제강점기를 한국 사회의 근대화를 추동했던 식으로 미화하려고 한 부분이 더러 보인다. 자연히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한국에 가한 폭력적인 행위나 수탈적인 모습은 될 수 있으면 감춰진다. 이런 관점에 서다 보니 의도적으로 역사적인 사실을 비틀거나 축소, 과장, 누락하는 일이 일제강점기를 전후 해서 많이 나타난다. 사료 검토도 제대로 안 했다는 생각이 든다."
-교학사 교과서가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읽히나.
"식민지 통해 근대화되어서 대한민국이 탄생했다고 하는 관점이 강하게 투영되어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는 것은 독립운동세력, 대한민국 건국이 임시정부와 관련된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2008년 이명박 정권이 8월 15일을 건국절로 하겠다고 한 것은 광복절 대신 건국절로 하자는 뉴라이트의 주장을 검토 없이 받아들인 것이다. 광복회 등 독립운동 단체에서 훈장까지 반납하겠다고 반대해 곤욕을 치렀다.
건국절 주장은 헌법 정신에도 맞지 않는다. 1948년 정부 수립 당시에도 건국이 아니라 정부 수립이라고 이야기했다. 뉴라이트나 교학사 교과서가 존경해마지 않는 이승만도 1948년 5월 31일 국회의장으로서 (새 정부를) 1919년 3ㆍ1운동으로 형성된 임시정부의 후신이라고 말했다. 정부 수립 때 중앙청에 붙인 플래카드도 '대한민국 정부 수립 국민 축하식'이었다. '건국'이라고 하지 않았다. 이승만은 대통령이 되고 그 해 9월 1일 관보를 냈을 때 사용한 연호가 '민국 30년'이었다. 대한민국 시작을 1919년으로 본 것이다. 이승만은 1948년을 건국으로 하면 강대국이 우리를 해방시켜준 것을 시작으로 삼는 것이니 주체성이 없다고 했다. 그는 3ㆍ1운동을 아예 3ㆍ1혁명이라 했고 미국 독립혁명보다 큰 가치가 있다고 하는 역사의식을 가졌다. 이런 인식에 의하면 이승만도 8월 15일 건국절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승만을 추켜세우려면 그런 것을 알고나 할 일이다. 자기들이 보고 싶은 이승만만 보아서는 안된다."
-최근 새로 임명된 국편위원장도 건국절을 주장했다.
"유영익 위원장은 정부 수립 당시 이승만이 그런 일관된 주장을 했다는 것을 몰랐을 수도 있다. 젊은 시절 이승만이 독립협회 관련해 투옥되고 거기서 영한사전을 만들고 옥중에서 수감자를 위해 교육도 하고, 저술한 것을 보면 정말 초인적인 사람이고 능력이 비상하고 의지도 굳건하다고 생각하다. 감동도 받았다. 그러나 해외 나간 뒤 1945년까지의 이승만에 대해서는 교학사 교과서나 유 위원장의 주장과 같이 독립운동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분인가 하는 데는 학계의 검증이 필요하다."
-교학사 교과서에는 일제강점기 부분에만 40여 차례 이승만이 등장해 그를 영웅시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새 국편 위원장도 이승만 찬양론자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1945년 이후 60년까지 우리 민족사적 과제가 무엇인가 생각해 보고 그런 민족사적 과제를 이승만이 성공적으로 수행했는가를 봐야 한다. 우선 첫째는 일제 잔재를 청산하고 민족적 정기를 세우는 일이 아니었는가. 일제 지배 아래 민족적 정통성이 훼손된 상황에서 시급한 문제는 일제 잔재를 청산하고 민족적 정기를 회복하는 것이었다. 이승만과 그 시대 사람들이 거기에 제대로 부응했느냐 하면 '예스'라고 할 수 없다. 특히 이승만은 1948년 정부 수립 후 국회에서 거의 제일 처음 만든 법률인 반민족행위처벌특별법을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교학사 교과서에서는 이를 교묘하게 비틀어, 어쩔 수 없이 반민특위를 해체시켰다는 식으로 서술했는데 특위 해체는 이승만의 분명한 의도였다. 자기 수족이 될만한 사람이 거의 친일 세력이었기 때문에 내린 고육책이다.
두 번째는 분단된 남북을 하나로 묶어 내는 작업이 시대적 과제 아니었을까. 어떤 사람들은 공산주의자를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이승만이 단독정부를 치고 나와 오늘날 대한민국이 있게 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거대한 민족사적 관점에서 볼 때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분단을 막았어야 했다. 분단 정부 수립은 최후의 선택이어야 한다.
세 번째는 이승만 때가 민주정부를 처음 세워 민주주의를 제대로 성장시켜야 할 중요한 시기라는 점이다. 이승만은 과연 민주정부 초대 대통령답게 민주주의적으로 모든 일을 처리했나. 이승만이 군사정부와 비교, 더 민주적이었다고 만족해야 할까. 종신대통령이 되기 위해 헌법을 고친 것이나, 자유당 정권의 반민주적 행태 같은 것을 보면 민주주의 사회를 세우는데 그가 얼마나 기여했는가 의문이다. 그래서 젊은 시절의 이승만을 높이 평가하지만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이나 해방 이후에 대해서 뉴라이트나 교학사 교과서에서 다루는 만큼 과도하게 언급할 분인가 회의적이다."
-교학사 교과서 필자 일부는 다른 교과서들이 자학사관에 물들어 있다고 말한다.
"일본의 교과서를 볼 필요가 있다. 일본 교과서는 처음부터 검인정이었는데 1982년 검인 신청 교과서의 일제강점기의 기술 등을 문부성에서 고치라고 지적하자 교원 노조가 들고 일어나 왜 정확한 서술을 고치라고 하느냐며 비판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이런 분위기에 가세해 일본 정부의 교과서 정책을 열심히 비판했다. 그래서 나온 게 독립기념관이다. 한국, 중국 비판이 거세지니까 일본은 '근린제국조항'이란 걸 만들어 주변국을 배려해서 역사 쓰자고 하고 1993년에는 사회당 연립정권이 들어서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사죄한 고노 담화가, 95년에는 침략행위 자체를 사죄한 무라야마 담화가 나온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 일본 교과서에도 종군위안부 문제나 식민지 만행 등에 대해 사실대로 기술하게 되었다.
그러자 자민당이 이걸 불편하게 여겼고 그래서 '자학사관'이라며 거기서 벗어나야 한다고 '자유주의사관연구회'를 만든다. 거기서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가 나오고 2002년 후소샤 책이 나온다. 한국에서 자학사관 운운하는 것은 일본의 것을 빼닮았다. 대한민국 성립 과정에서 부정적인 면을 기술했다고 해서 그것을 자학사관이라 부르면 역사는 자랑하기 위해 있는 것인가라고 물어야 한다.
그 동안 나온 검인정 역사교과서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한민국의 성장 발전과 제약 요건들, 군부정권의 반민주성이나 부패를 일정하게 기술했다. 그래야 건전한 후세를 키울 수 있는 것이다. 후소샤 교과서를 향해 침략 정당화해서 올바른 미래 세대를 키우겠느냐고 비판하지 않나. 그런 비판을 우리에게도 해야 한다. 역사에는 자랑할 것만 있는 게 아니라 뼈아프게 반성할 부분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기 성찰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역사 편찬 기관으로서 국편의 정치적 중립성이 퇴색하고 있다는 우려가 있다.
"이명박 정권에서 국사편찬위원장 데려다가 건국 60주년 타당성을 말하도록 하여 국편을 정권이 필요로 하면 역사적인 이데올로기를 제공해주는 기관처럼 만들어버렸다. 국편은 특정한 정권의 역사관을 뒷받침하는 기관이 아니라 정부가 아닌, 국가의 역사 편찬을 관장하는 기관이다. 이번 교과서 검정도 국편을 예속화시킨 결과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국편 본연의 역할인 공명정대한 역사 편찬이 힘들게 된다. 신임 유 위원장은 자신에 대한 비판에도 유의하여 국편이 더 이상 정권 논리에 영합하는 것을 극복해야 할 책임이 있다."
-역사 문제가 정치ㆍ사회적인 갈등으로 자꾸 확대된다. 어떻게 풀어가야 하나.
"역사문제는 역사학계에 맡겨야 한다. 역사교과서는 역사학계가 그때까지 공유한 역사 인식을 종합해서 후세에 보여주는 것이다. 뉴라이트의 식민지 근대화론은 역사학계 소수의견이다. 주로 경제사 공부한 사람이 경제사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것인데 역사는 경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식민지 시대에는 조국을 찾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는지 알 수 없다. 동학교도, 의병, 독립운동가들 말이다. 일제강점 뒤 얼마나 한국인의 자유가 제약되고 창의성이 말살됐는지에 대해 왜 지적하지 않는가.
교학사 교과서 대표 필자 중 한 사람이 한국일보 기고(9월 11일자)에서 이럴 거면 차라리 국정으로 돌아가자고 주장한 것을 읽었다. 이는 자기들의 자유민주주의 논리에 따라도 모순이다. 오히려 교과서를 자유발행하자고 해야 맞는 것인데 자가당착이다. 혹시라도 교과서 논쟁의 결론을 국정교과서로 돌아가자는 것을 노리고 한 말이 아닌지 우려된다."
▲ 경남 함안 출생
▲ 서울대 대학원 국사학과 박사
▲ 숙명여대 한국사학과 교수, 연세대 석좌교수 등 역임
▲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이사장, 한국사학회장, 국사편찬위원장(2003~2006년), 한국독립운동사 편찬위원장, 독립유공자심사위원장 등 역임
▲ '단재상' '황조근정훈장' '상허대상' '용재 석좌교수상' '독립기념관 학술상' 등 수상
▲ 등 근현대사와 기독교사 관련 저서 다수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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