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의 파사칼리아가 흐르는 가운데 침대에 누운 젊은이는 담배를 피우고 있다. 고뇌와 절망을 떨쳐내려는 듯 어느새 몸을 곧추세우고 무대를 누비던 그는 의자에 올라 한쪽 발로 등받이를 밟고 천천히 넘어뜨린다. 미하일 바리시니코프가 주연한 영화 '백야'(1986)의 첫 장면으로 삽입된 발레 '젊은이와 죽음'이다.
#조용한 무대, 여섯 명의 발레리노가 걸어 나온다. 잔잔히 흐르는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을 압도하는 거센 바람을 가르는 소리를 내며 펜싱 검을 휘두르는 동작 자체로 훌륭한 안무가 된다. 체코 출신 안무가 이어리 킬리안의 '프티 모르'의 첫 장면이다.
한국 발레의 양대 축인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이 20세기 모던 발레를 각각 선보인다. 여성 무용수가 흰색 의상을 입고 등장하는 발레 블랑의 우아한 미학이 빛나는 고전 발레와 달리 무용수의 에너지와 개성, 연기력이 돋보이는 게 특징이다.
국립발레단은 11~13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모던 발레의 초기작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 안무가 롤랑 프티(1924~2011)의 세 작품 '아를르의 여인'(1974) '젊은이와 죽음'(1946) '카르멘'(1949)을 한 무대에 올린다.
100편이 넘는 작품을 안무한 프티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등의 영향으로 연극적 발레를 탄생시켰다. '아를르의 여인'은 이루지 못한 사랑에 죽음만을 생각하는 남자 주인공 프레데리의 고뇌에 찬 연기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남자 무용수의 에너지가 분출되는 프레데리의 자살 장면이 명장면으로 꼽힌다. '카르멘'은 의상부터 눈길을 끈다. 초연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던 쇼트커트에 코르셋을 입은 카르멘이 등장한다. 카르멘 역의 김지영 등 국립발레단의 주역 무용수들이 총출동한다. 동양인 최초로 파리오페라발레단에 입단했던 김용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도 '젊은이와 죽음'에 객원으로 출연한다.
유니버설발레단이 24~27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무대에 올리는 '디스 이즈 모던'은 세 안무가의 작품 네 편을 모은 공연이다. 한스 반 마넨의 '블랙 케이크', 나초 두아토의 '두엔데', 이어리 킬리안의 '프티 모르'와 '젝스 탄체' 등으로 모두 네덜란드댄스시어터(NDT)에서 1980~90년대에 초연된 작품이다. '블랙 케이크'는 파티장의 점잖은 남녀가 술에 취해 가며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해학극이다. '두엔데'는 드뷔시의 음악을 춤으로 표현했다. '프티 모르'와 '젝스 탄체'는 펜싱 검과 딱딱한 드레스 모형 등 소품이 겹치는 등 옴니버스처럼 연결된 인상을 주는 작품이다. 황혜민, 엄재용, 이동탁, 강민우, 이승현 등이 출연한다.
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