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나오는 길에 커피를 뽑아 벤치에 앉았다. 태풍이 접근 중인 탓인지 습하고 조금 더웠다. 장마에 접어드는 유월 끝자락의 냄새가 났다. 계절이 뒷걸음질 친 것 같은 공기랄까. 그 공기 속에서 한참 먼산바라기를 하고 있자니 흐린 하늘에 두둥실 떠 있는 거뭇한 물체가 시야에 들어왔다. 새인가? 아니다. 비행기? 설마. 저렇게 느릿느릿 움직일 리는 없지. 그 방향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눈을 가늘게 떠 보았다. 가운데에 구멍이 있었다. 아, 연이구나. 다만 주변을 두리번거려도 물레를 잡은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 멀리 있는 솜씨 좋은 손이 길게 연줄을 푼 걸까. 아니면 줄이 끊긴 연이 바람을 타고 여기까지 날아온 걸까.
대형 태풍 볼라벤이 덮쳤던 작년 어느 날이 생각났다. 그날 나는 십층 정도 높이에서 덜컹거리는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맞은편 건물 곳곳의 유리창에 신문지가 붙어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돌연 저 아래서, 거리를 뒹굴던 검은 비닐봉지가 휘리릭 치솟았다. 바람의 결을 따라 큰 폭의 갈지자로 춤을 추며 내가 있는 높이까지 날아올랐다가, 살짝 낙하했다가, 다시 바람을 따라 높이 더 높이, 하늘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 비닐봉지가 내내 공중을 떠돌다가 이제 연이 되어 돌아온 건, 물론 아니겠지. 하지만 연과 함께 작년 태풍의 어수선했던 날들이 선명해진다. 이번 태풍은 부디 우리네 살림살이를 사납게 할퀴지 말아야 할 텐데.
시인 신해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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