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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10월 8일] 21세기의 친일파와 역사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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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10월 8일] 21세기의 친일파와 역사교과서

입력
2013.10.07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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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패망한 지 근 70년, 아직도 우리는 '친일파'와 싸우고 있다. 인터넷 같은 하위문화적 공론장에서도 여전히 '친일파'는 최고의 욕이다. '친일파'와 '친일 청산'은 분명 단순하고 낡은 코드이다. 친일 대 반일의 구도는 지나치게 이분법적이어서 오히려 식민지배의 본질을 놓칠 수 있으며, 민족 스스로가 해야 할 반성도 몰각하게 만드는 면이 있다. 또한 친일파 때문에 모든 게 망쳤다는 식의 단순화나, 반일 민족주의의 언어도 낡은 것임에 분명하다. 그럼에도 엄연히 이 '친일파'라는 단죄의 정서와 언어는 살아있다. 그것은 '친일'이라 상징되는 악(惡)이 모습을 바꾼 채로 존재하고 있는, 현실을 수동적으로 반영한다.

일본의 한반도 지배가 나빴던 이유는 단지 그들이 이민족이어서가 아니라, 최악의 인종주의와 군국주의, 반민주주의에 근거한 '침략'이었기 때문이다. 일제가 한국의 근대화를 자극했다지만, 한국인의 절대다수는 일제강점기 내내 주권은 물론, 인간으로서의 기본권과 시민권을 누리지 못했다. 또한 대다수 농민ㆍ노동자의 생존권이 보장되지 못했고, 무고한 젊은이들이 침략전쟁에 나가 총알받이가 되고 성노예가 되어야 했다. 일본 제국주의는 한국뿐 아니라 20세기 초반 환태평양과 동아시아 민중 전체의 고통의 원인이었다.

따라서 '친일파'가 악의 다른 이름인 것은, 그들이 추상적이고 모호한 '국가'나 '민족'을 이민족에게 '팔아먹'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들이 배신하고 팔아넘긴 것은 인민주권과 민생, 그리고 평화와 민주주의였던 것이다. 친일파는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립되는 그 모든 것의 옹호자이며 나쁜 권력의 노예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가난한 한국 민중과 평범한 여성과 청년들의 목숨을 실질적으로 위협한 한줌의 기득권 세력이었다.

이제 친일파는 모두 죽고 없다. 그리고 그 자손들에게 조상의 책임을 묻기도 어렵다. 그래서 친일 청산 문제는 한편 일종의 기억투쟁이다. 그러나 기억투쟁은 항상 '현재' 때문에 벌어진다. 이 기억투쟁에는 한반도 안팎에서 긴요한 현안이 연관돼 있는 것이다.

해방 후 친일 청산의 문제는 반봉건적인 사회 개혁과 민주주의의 구성과 긴히 연관돼 있었는데, 이 과제는 사산됨으로써 후대로 물려졌다. 최근 벌써 대권 도전을 선언한 한 여당 정치인을 보라. 친일파는 반공과 보수의 탈을 쓰고 부와 권력을 확대 재생산해왔기에 '친일파 후손'도 세속의 온갖 것을 다 가진 경우가 많다. '친일 청산' 같은 낡은 민족주의적 담론을 유효하게 하는 지정학적 현실도 새삼 엄중하다. '친일파' 같은 단어가 필요 없는 때는 일본인들이 진정한 민주 평화국가의 시민으로 살아가고, 동아시아에서 전쟁의 가능성이 0이 될 때이다. 그러나 동해 동쪽에서 벌어지는 '우경화'는 심상찮다.

'친일파' 운운하는 대중은 단순히 철 지난 민족주의에 근거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현실을 느끼고 있다. 그러니까 '친일파'와 친일 청산의 표상은, 탈식민주의와 민주주의에 관한 정당한 정치적 정념이 다른 적실한 표현을 얻지 못한 채 민족주의의 말옷을 걸친 것이다. 달리 말해 이 말들은 정치언어의 표현(시니피앙)과 내포(시니피에)가 불일치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독도는 우리 땅' 같은 구호와도 비슷하다. 그 구호는 분명 역사적 반제ㆍ탈식민주의를 내포하지만, 겉으로는 영토제국주의나 유치한 애국주의의 구호와 다름없는 표현을 취한다. 이는 정당한 탈식민주의의 논리를 저 이북 세습정권의 성마른 언어와는 다른 것으로 구성해내지 못하는 진보 정치세력의 아포리아와 유사한 것인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친일과 한국식 보수ㆍ수구가 논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상동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친일파는 우익이었다. 국가주의자이며 반민주주의자들이었다. 그 같은 정치적ㆍ내용적 '친일-보수ㆍ수구'의 계보학은 현재에도 이어진다. 집권당의 일부, 뉴라이트 그리고 그들에 의해 씌어진 역사 교과서가 그 증거이다. 21세기 '친일 청산'은 반전 평화와 반원자력, 반패권주의에 근거해야 한다. 요컨대 교학사 역사 교과서를 폐기하는 것은 민주주의와 인권 차원의 과제다.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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