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내가 주로 이용하는 신한은행의 스마트 금융센터라는 곳에서 이메일을 보내왔다. 제목은 “잠시만요~온라인 상품 가입하시고 100만원 상품권 받아가실께요.”였다. 읽는 순간 피가 역류할 것처럼 화가 나서 바로 답장을 보냈다. 이따위 이상한 말 당장 그만두라고.
“~하실게요”라는 말이 잘못된 거라고 수차례 글을 쓴 나로서는 이게 유행어로 번지는 걸 구경만 할 수 없었다. 어법도 틀렸지만, ‘받아가실께요’도 틀렸다. ‘실께요’가 아니라 ‘실게요’라고 써야 맞다. 이메일로 회신하고 나서 사흘 뒤에 살펴보니 ‘발송 실패’라고 해 다시 회신을 보냈지만, 그들이 내 메일을 읽거나 답장을 보내리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는다.
그저께는 “잠시만요! 옛 충남도청사 대전 근현대사 전시관에 들렸다 가실게요~!”라는 대전광역시의 메일을 받았다. ‘가실게요’도 못마땅해 죽겠는데 대전시는 ‘들렀다’를 ‘들렸다’라고 쓸 만큼 맞춤법에도 무지했다.
내용은 대전 중구 선화동의 옛 충남도청사가 ‘대전 근현대사 전시관’으로 재탄생했으니 와서 보고 가라는 것이다. 이제는 공공기관까지 한통속이 되어 국어를 오염시키고 있으니 한심한 일 아닌가? 나는 대전이 제2의 고향이지만 가보고 싶지도 않다.
“~하실게요”라는 이 이상한 말은 몇 년 전부터 접객업소와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퍼졌지만 요즘 부쩍 자주 듣게 된 것은 KBS 2TV ‘개그콘서트’의 ‘뿜 엔터테인먼트’에서 박은영이라는 개그우먼이 “보라언니 ~하고 가실게요.”라고 외쳐대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이 따라 하는 것은 물론 대학의 신입생 유치 등 각종 광고에도 “~하실게요”가 등장했다. 긴가민가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자신 있게 그 말을 하고 있다.
그런데 9월 1일 ‘개콘’이 방영될 때 자막에 이런 내용이 떴다. ‘~하고 가실게요’는 주체 높임형 선어말어미 ‘시’와 약속형 종결어미 ‘~ㄹ게’가 함께 쓰인, 잘못된 표현이라는 것이다. 바른 표현은 ‘~할게요’ ‘~하겠습니다’라는 게 그 자막의 핵심이었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자막을 얼마나 주의 깊게 봤을까? 선어말어미가 무슨 뜻인지 다 알까? 예로 든 바른 표현도 경우에 따라 다를 수 있다. ‘~하실게요’는 ‘~할게요’나 ‘~하겠습니다’가 아니라 ‘하세요’로 바꿔 써야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 이리 오실게요.”가 아니라 “자, 이리 오세요.”라고 말해야 한다.
KBS 자막보다 더 상세한 설명을 한번 들어보자. 그 말에는 두 가지 잘못이 있다. 첫째 서술어와 주어의 호응이 부자연스럽다. ‘~ㄹ게’는 어떤 행동을 약속하는 뜻을 나타내는 종결어미다. 그런데 “보라 언니 ~하고 가실게요.”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말하는 게 아니라 보라언니가 주어이므로 문법적으로 어색하다. “보라 언니 ~하고 가실 겁니다.”라고 해야 맞다.
또 한 가지 잘못은 높임법 문제다. ‘보라 언니’는 이 프로그램에서 사장보다 높은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보라 언니 ~하고 가실게요’처럼 ‘가시다’가 아니라 ‘갈 겁니다’나 ‘갑니다’처럼 그냥 ‘가다’라고 하는 게 우리말의 높임법에 맞는 표현이다. 자기보다는 윗사람이지만 그보다 더 윗사람에게 그를 말할 때는 높임말을 붙이지 않는 게 경어법의 원칙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말이 잘못이라는 자막을 본 시청자들이 어깃장을 놓는 경우가 많았다. 잘못된 표현인 줄은 알지만 ‘~하고 가실게요’가 더 찰진 맛이 난다는 것이다. 블로그에 “이제 개그하려면 한글공부도 해야겠네요.”라고 쓴 사람이 있다. “한글단체의 지적으로 그런 자막을 내보냈다는데 유행어를 가지고 너무한 거 아냐, 개그 콘서트는 개그인데 왜 다큐로 받아들였지?”라고 쓴 녀석도 있다.
MBC TV의 인기프로그램 ‘아빠! 어디 가?’를 가지고 이 지적에 반감을 드러낸 경우도 있다. 그 프로그램에 나오는 윤후라는 아이가 “왜 때문에 그래요?”라고 말한 적이 있나 보다. 이것도 잘못된 표현인데 왜 이건 지적하지 않느냐는 거다. 아니,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어린애가 문법에 맞지 않는 말을 한 것과 이것을 어떻게 비교한단 말인가?
정작 의아한 것은 소위 공영방송이 잘못된 표현이라면서 왜 그 말을 계속 떠들게 내버려 두느냐 하는 점이다. 인기 높은 유행어가 됐으니 또 한 건 했다고 생각하는 걸까? 6일 밤에도 KBS에서 이 말을 들을 수 있었는데, 가장 인기가 높다고 판단해선지 맨 마지막 순서에 ‘~하실게요’가 나왔다.
나는 그 말을 하는 개그우먼의 음색마저 호감이 가지 않는다. 이것은 ‘그래?’를 ‘고뤠에?’라고 우습게 발음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고뤠에?’는 단순한 발음 파괴이지만 ‘~실게요’는 심각한 문법 파괴, 국어 파괴다! KBS, 정신 차리세요.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 fused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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