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지역 주민들과 협의를 통해 원만히 해결하겠습니다.”
지난해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국정감사장에 증인으로 참석했던 삼성중공업 사장은 이 원론적 답변 한마디를 하기 위해 하루 종일 증인석을 지켰다. 당시 국토위 소속 의원들은 지난 2007년 발생한 태안 기름유출 사고에 대해 삼성측이 보상을 늘려야 한다는 기존 주장만을 되풀이했을 뿐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핵심질문은 꺼내지도 않았다. 결국 삼성중공업 사장에 대한 뻔한 질문과 답변은 20여분 만에 끝났다.
오는 14일부터 시작되는 올해 국감에도 100여명의 기업인들과 재계인사들이 증인으로 호출됐다. “국민의 대표기구가 현안이 있는 기업인을 부르는 건 당연한 일”이란 게 기본 시각이지만, 실체적 내용추궁 없이 증인석에 앉혀놓기만 하거나 호통만 치는 경우도 많아 ‘기업인 군기잡기’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끊이질 않고 있다.
6일 국회에 재계에 따르면 이번 국감에서 기업인들을 증인으로 신청한 상임위는 산업통상자원위, 정무위, 국토해양위, 환경노동위 등이다.
산업위에선 자원수입 및 발전문제를 다루기 위해 포스코 정준양 회장을 비롯해 GS에너지, SK E&S, 포스코에너지 대표 등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백화점 상생이슈와 관련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도 증인신청명단에 올랐다.
정무위에선 동양그룹 법정관리신청과 관련해,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을 증인으로 불렀다. 또 삼성전자 CEO인 권오현 부회장과 모바일담당 신종균 사장, 현대차 김충호 사장, 조준호 LG사장 등도 증인석에 앉게 됐다. 국토해양위에선 4대강과 관련해 전경련 회장인 허창수 GS그룹회장을 불렀고, 정몽규 현대산업개발회장도 호출됐다.
증인선정여부는 각 상임위별 여야간사협의를 통해 최종 선정된다. 때문에 각 기업들은 올해도 오너나 CEO들이 증인에서 빠질 수 있도록 총력전을 펴고 있는데, 경제민주화 등 현재 분위기상 작년(145명)에 버금가는 기업인들이 증인으로 최종 선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문제는 국감에 호출된 기업인 가운데 상당수는 질의 한번 없이 증인석에 앉아있다가 온다는 점이다. 실제로 지난해 정무위 국감의 경우 26명의 기업인이 증인으로 참석했지만 질문을 받은 기업인들은 14명에 불과했고, 나머지 12명은 하루 종일 국감장만 지키다 돌아갔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주요 현안에 국회가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하지만 그보다는 대기업 오너나 대표들을 증인으로 몇 명 불렀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경우가 많다”며 “호통만 치고 답변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건 군기잡기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도 이날 성명을 내고 기업인들에 대한 국감 증인채택이 과도하다며 기업인 증인신청ㆍ채택이 최소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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