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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자살 사망자의 35%가 직장·학교 부적응 탓 극단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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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자살 사망자의 35%가 직장·학교 부적응 탓 극단의 선택

입력
2013.10.0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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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 아버지의 폭력으로 어머니 가출 경험

학창 시절 : 특별히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고 친구는 소수

학력 : 대학에 합격했지만 가정 사정으로 진학 못함

직업 : 한 직장을 1년 이상 다니지 못하고 여러 직업을 전전

2년 전 : 청각장애로 수술을 받음

1년 전 : 수건을 묶어 놓은 것이 방에서 발견됨

3개월 전 : 가족에게 생활비를 주지 않기 시작함

2개월 전 : 대출금 관련 채무불이행으로 채권추심

1개월 전 : 밤에 잠을 못 자는 모습이 목격됨

10일 전 : 혼자 술 먹고 우는 모습이 목격됨

5일 전 : 가족에게 탕수육을 사줌

3일 전 : 친구들에게 "미안하다"는 문자를 보냄

1일 전 : 어머니에게 용돈을 줌

위 연대기는 사망자의 신분이 드러나지 않도록 몇 개의 심리 부검 사례를 섞어 재구성한 것이다. 연구진은 심리적 부검을 통해 고인의 연대기를 작성하다 보면 자살에 이르게 된 마음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이들의 삶의 경로에서 공통점을 찾으면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시기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원인은 복잡해도 징후는 명확하다"

미국의 사망심리학자 에드윈 슈나이드먼은 1958년 신체적 부검과 대비되는 의미로 '심리적 부검(Psychological Autopsy)'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했다. 그의 저서 을 소개하는 아마존닷컴 서평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그는 모든 심리학적 질문은 궁극적으로 단 두 개의 단어로 답할 수 있다는 것을 탁월하게 보여줬다. 그것은 '경우에 따라!(It depends!)'이다" 모든 자살은 개별적 행동이기 때문에 이유도 다 다르다. 단순하지도 않다. 부모의 가출을 경험한 사람이 다 자살을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빚에 쪼들려 홀로 술잔을 기울이는 이들 모두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도 아니다. 이영문 국립공주병원장은 "자살의 원인을 쉽게 추정하면 안 된다.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우울증이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개인은 복잡하다"고 말했다.

복잡한 개인의 극단적 선택을 최대한 온전히 이해하려는 것이 심리적 부검의 우선 목적이다. 서종한 아주대 전임연구원은 "흔히 한두 가지로 알려지는 자살의 원인이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맞는다고 할 수도 없다. 예를 들어 '성적비관'은 단순히 보여지는 것일 뿐이다. 성적이 떨어지는 원인이 있을 것이고, 그 배후에는 가정문제, 친구나 이성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심리적 부검을 통해 드러나는 원인은 다면적이다. 여러 국면에서 연이어 닥치는 불행들이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며 삶을 옥죈다. 서종한 전임연구원은 "직장에서의 갈등이 가정이나 사생활의 문제와 얽히는 식이다. 의지할 곳이 없으면 문제를 혼자 해결하려고 하고 그러다 소외를 경험하고 우울증이 오고…, 자료를 분석하다 보면 자살 징후가 선명해지는 순간이 있다"고 말했다.

가족중시 가치관과 다른 현실

심리적 부검의 궁극적 목적은 자살자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징후를 밝혀 예방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지난해 아주대 김경일 교수와 서종한 전임연구원 등은 56건의 심리적 부검 사례를 분석한 '한국 자살사망자의 특징: 사례-대조 심리적 부검 연구'를 발표했다. 이 연구는 국내 최초로 유의미한 규모의 심리적 부검 결과를 담은 것으로 평가된다.

연구 결과 가장 중요한 자살 위험 요인은 학교나 직장에서의 적응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자살 사망자 35%가 학교나 직장에서 분명한 문제를 겪었던 것으로 드러나 대조군인 타살 사망자의 경우(1.7%)와 큰 차이를 보였다. 동거인과 문제가 있었다는 항목에서는 자살군 57.1%, 대조군47.2%였다. 김경일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은 가족을 중시한다는 생각이 있는데 가치관과 현실은 정반대다. 가족은 속된 말로 틀어지면 안 보고 살 수도 있다. 하지만 직장은 쉽게 그만둘 수가 없다. 이직을 하려면 굉장히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기 때문에 고통을 감내하는 경향이 있다. 왕따 문제가 유난히 심각한 것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서구사회에 비해 사회적 관계를 중시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인간 관계에서도 자살군과 대조군은 차이를 보였다. 걱정을 말할 수 있는 신뢰하는 사람이 없는 경우는 자살군이 64.2%로 대조군의 22.2%보다 높았지만, 4명 이상 친한 친구가 있는 비율은 자살군이 14.2%로 대조군의 50%보다 낮았다. 또 자살을 예고하는 주요 행위로는 자해 전력이 꼽혔다. 사망 전 자해 시도 여부에서 자살군과 대조군은 각각 46.4%, 8.3%를 나타냈다.

유대는 깨졌지만 소문은 무성

특정 지역이나 직업의 자살 특성을 규명하기 위한 심리적 부검도 진행되고 있다. 백석대 사회복지학과 최명민 교수팀은 충남에서 '농촌형 자살'을 연구하고 있다. 충꼭?2010년 전국 최고인10만명당 44.6명의 자살률을 기록하는 등 국내에서도 자살이 많이 발생하는 지역으로 꼽힌다. 최 교수팀은 충남 내에서도 자살률이 가장 높은 3개 군에서 24건의 심리적 부검을 진행, 지난 달 자살예방종합학술대회에서 중간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 결과 자살자 중 83.3%는 가족ㆍ이웃과의 관계에서 단절이나 갈등을 겪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최근 5년 내 한 동네에서 자살 사건이 발생한 경우도 25%였다. 최 교수는 "농촌 공동체가 거의 깨져서 혼자라고 느끼는 노인이 너무 많다. 자식들도 일찌감치 도시로 나가서 자식과의 유대도 도시보다 소원하다. 반면 소문이 금방 번지는 문화는 그대로 남아 있다. 도시에서는 연예인의 자살이 영향을 끼친다면 농촌은 이웃의 자살이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최 교수팀이 사례별 자살 원인 및 특징을 정리한 자료를 보면 '우울증(?)'이라는 표시가 여러 번 등장한다. 정황상 질병 수준의 우울증이 의심되지만 진단이나 치료를 받지 않은 경우다. 최 교수는 "우울증 증상이 있어도 농촌에는 도움을 줄 수 있는 시설이 너무 없다. 술을 빼고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길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최 교수팀이 심리적 부검을 진행한 사례 중에는 두 달 새 다섯 차례 자살을 시도한 끝에 사망한 노인도 있다. 최 교수는 "농촌의 자살 예방 대책은 도시와 같으면서도 달라야 한다. 이런저런 행사를 해도 정말 힘든 노인은 나오지 않는다. 찾아가는 서비스를 고민할 필요가 한다"고 말했다.

박지영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경찰, 소방관, 복지 공무원 등 특정 직군에서 발생하는 자살을 연구하고 있다. 자신의 연구를 '질적 심리사회 부검'이라고 소개하는 박 교수는 한 사례에 대해 가족뿐 아니라 직장 동료, 친구 등 다층적 인터뷰를 시도한다. 그는 "우리나라 성인들은 직장에서 생긴 일을 집에서 잘 얘기하지 않아 실제로 가족은 모르는 일을 직장 동료나 친구는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미 답을 안다"

심리적 부검이 자살문제 해결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병영인권연대 심리치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는 최대헌 박사는 "어찌 보면 한국 사회에서 유난히 자살률이 높은 원인은 다 나와 있다. 과거처럼 관계중심 사회도 아니고 사회적 안전망이 갖춰져 있지도 않다. 강한 사람이야 살겠지만 맷집이 약한 사람들은 견디기 어려운 사회다"라고 말했다. 결국 사회 시스템과 분위기 자체가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으로 자살 예방을 위한 조치가 사회를 바꾸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의료계와 사회복지학계, 심리학계 등의 통합적 연구와 지역 연계 연구 필요성도 제기된다. 인천시 자살예방센터는 6월 31명에 대한 심리적 부검 연구 결과를 발표했으며 부산시도 경찰과 협력해 심리적 부검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영문 국립공주병원장은 "각 단체별로 연구를 진행하기보다는 공통의 면접 모델을 개발하고 시기를 통일하는 등 협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의미 있는 통계를 작성할 수 있고 연구의 질적 수준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류호성기자 r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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