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중임에 성공한 마잉주(馬英九ㆍ사진) 대만 총통이 국회와 정치권을 도청한 의혹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았다. 총리격인 행정원장과, 검찰총장도 같은 날 신문을 받았다. 대만 사법 사상 초유의 일이다.
타이베이(臺北)지방검찰청은 3일 마 총통을 황스밍(黃世銘) 검찰총장의 비밀누설 고발 사건 증인 신분으로 소환, 2시간 가까이 조사했다고 대만의 중국시보(中國時報) 등이 전했다. 검찰은 또 행정기구 책임자인 장이화(江宜樺) 행정원장(총리)과 뤄즈창(羅智强) 전 총통부 대변인도 함께 신문했다. 황 총장은 이날 피고발인 조사를 받았다.
이번 파문은 황 총장이 8월31일과 9월1일 마 총통의 정적인 왕진핑(王金平) 입법원장(국회의장)과 연루된 권력남용 도청 내용 등을 마 총통에게 사전 보고한 것이 발단이 됐다. 당시 황 총장은 왕 원장이 야당의원 횡령 의혹 사건을 잘 처리해 달라고 사법 당국에 청탁한 사실을 대만 최고법원검찰서(대검) 특정조(特偵組ㆍ특수수사팀)가 적발해 냈다고 보고했고 마 총통은 이를 바탕으로 왕 원장의 당적을 제명처리하며 정치 공세에 나섰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특정조가 입법원과 야당 의원의 전화를 도청한 사실이 드러나며 상황이 역전된다. 삼권분립의 원칙을 훼손하며 왕조시대에서나 있을 법한 조직을 동원해 정치권을 도청하도록 지시한 것이 마 총통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야당 측은 곧바로 황 총장을 수사정보 누설죄로 고발했고 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마 총통과 황 총장 등을 이날 소환했다.
마 총통은 검찰 조사에서 도청 지시 의혹을 전면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황 총장도 정상적인 보고 절차였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일부 언론은 4일 마 총통이 기소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다만 현직 국가 원수는 내란 또는 외환죄가 아니면 임기 중 기소되지 않는다는 헌법 규정상 마 총통이 실제로 사법처리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문제는 마 총통의 지지율이 이미 한자릿수로 추락한데다가 스스로 물러나지 않을 경우 야권과 시민단체들이 하야 및 탄핵 운동을 하겠다며 전면전을 선포하고 나섰다는 데 있다. 지난달 29일 열린 항의 집회에는 수만명이 참여했다. 야권은 최근 6년 사이 사법기관의 감청 건수가 50만건에 이른다며 마 총통이 도청 지시의 배후라고 계속 물고 늘어지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친중국 성향으로 대만 내 반발을 샀던 마 총통이 최대 정치 위기를 과연 어떻게 극복할지 주목된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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