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고유명사가 아니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행복이라는 단어는 언제나 인용부호에 속박된 채 고유명사처럼 표기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남들은 그렇다고 말하는'이라는 의미 한정이 이 홑따옴표의 용례이므로, 이 소설 속에서 숱하게 마주치게 될 '행복'이라는 단어는 국어사전에 나오는 공동체의 합의된 정의와 배치된다.
히라노 게이치로(38)의 신작 장편 는 독자를 힘들게 하는 소설이다. 1,000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 때문이 아니다. 고속열차의 리듬으로 달리는 이 범죄 서사는, 아슬아슬하게 버티던 댐이나 제방이 임계점을 넘어 와르르 무너지는 현상을 뜻하는 제목처럼, 독자의 혈류 속도를 바꾸고, 심장과 두뇌를 쥐락펴락하다가, 묵직한 통증을 남긴 채 끝난다. 스물 넷의 나이로 아쿠타가와 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단한 이 작가의 대표작은 에서 로 갱신돼야 할 것 같다.
소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지만 모든 것에 뛰어난 형 다카시와 형을 사랑하지만 열등감에 시달리는 동생 료스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문어발 연애' 중인 염세주의자 형과 달리 동생은 결혼해 세 살 아들까지 둔 직장인으로 평범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간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그는 아내도 형도 모르는 비밀 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삶의 세목들과 내밀한 심사는 오직 그 블로그의 방문자만이 알 수 있다.
1권의 절반 이상을 두 형제의 잔잔한 일상으로 끌고 가던 소설은 동생 료스케가 엽기적 토막 살인의 사체로 발견되면서 예열된 서사 엔진에 급가속을 부여한다. 신체의 각 부분이 열도 곳곳에서 발견되고, 사체에는 철학적이기까지 한 범행 성명문이 여 보란 듯 첨부돼 있다. 피살자가 줄을 이으며 일본 사회가 무차별 살해의 공포에 휩싸이는 가운데 범죄 용의자로 형 다카시가 지목된다.
엔터테인먼트를 위한 소재로 살인을 다루는 추리소설 일반과 달리 는 살인이라는 행위의 겉과 안에서 현대 사회라는 현실적 주제를 철학적으로 파헤친다. '연설'에 가까운 형태로 주제를 직접 노출하는 서술법은 소설에서 악에 가까운 것이지만, 이 소설에서 독서의 인력이 가장 높은 부분이 바로 이 '장광설'이라는 점이 현학적 필치로 유명한 히라노 게이치로의 독특한 매력이다. 그 매력은 추리소설의 서사를 빌려온 이 작품의 박진감 넘치는 플롯을 능가한다.
실제 범인이 다카시가 아닌 '악마'라는 사이코패스임을 처음부터 노출하고 들어가는 소설은 학교 내 집단 따돌림, 은둔형 외톨이, 인터넷의 익명성이 초래한 폭력적 군중의 양산, 선정적 언론 매체의 폐해 등 굳이 일본이라 특정할 필요 없는 현대 사회의 문제들을 망라하고 있다. 하지만 작가가 선악의 피안을 넘나들며 폭로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다. 당신은 행복을 가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
희대의 살인마가 벌인 무차별 살인의 희생자는 구글 검색란의 '행복'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말 그대로 '검색'된다. 무참한 살해 현장의 동영상 속에서 살인마 '악마'는 요구한다. "네가 단 한 마디, '나는 불행합니다'라고만 말한다면, 목숨만은 살려달라는 애걸을 받아주지! 너는 한쪽 귀를 잃었지만 목숨을 이어갈 순 있어. 이 '행복'의 제국에서 열등민으로, 비참하게, 초라하게. …똑똑히 말해! 내 아내는 추하고, 내 아들은 모자라고, 나는 무능하다, 불행하다. 이 세상은 오로지 악의와 증오로만 나를 맞아들이고, 저주와 함께 내쫓는다'고!"
유전과 환경에 의해 이 사회에서 존중 받을 가능성 자체를 박탈당한 악마는 "'행복'주의는 온갖 에러의 폭발을 억지하는 효율적인 보안 시스템. 작은 '행복'! 사사로운 '행복'!"라고 절규한다. 누구든 행복의 레이스에 참여해야 하며, 레이스에서 패배하는 것은 허락되지만 이탈하는 것은 안 된다.
노력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속임수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시대의 젊은이들을 살인이라는 가공할 범죄의 형태로 각성시키려는 '악마'의 절규는 이 묵직하고도 슬픈 소설이 독자에게 가하는 통증의 원인이다. 현실의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행복이 네이버 블로그와 페이스북과 트위터에만 가면 넘쳐나는, 콜레라처럼 '행복'이 창궐한 시대. 우리는 정곡을 찔렸다. '현대판 죄와 벌'이라는 홍보 문구가 식상하지만, 이 클리셰 말고 달리 표현할 도리가 없는, 굉장한 소설이다.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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