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현 국립경주박물관) 초대 관장을 맡은 모로가 히데오는 문화재 약탈꾼이었다. 일본에서 빈둥거리다 조선에 건너와 무역업을 하던 그는 고고학전문가로 행세하며 '경주고적보존회'를 만들었다. 말이 보존회지 실상은 문화재 도굴과 강탈을 자행하기 위한 위장조직이었다. 수많은 유물을 착복하던 그는 결국 검찰에 체포됐다. 박물관장으로 금관총 발굴을 주도하다 출토품인 금제 유물 8점을 빼돌린 게 들통났다.
▲ 히데오가 빼돌린 금관총 유물은 일본인 사업가 오구라 다케노스케에게 넘어갔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오구라 컬렉션'의 장본인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전력 사장, 대구상공은행 총재 등을 거친 오구라는 닥치는 대로 우리 고미술품을 수집했다. 총 1,140점의 오구라 컬렉션 가운데는 도굴된 것들이 적지 않다. 유물은 그가 사망한 후 1982년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돼 관리돼오고 있다.
▲ 지난 1일 도쿄국립박물관에서 열린 '조선시대의 미술' 기획전에는 오구라 컬렉션에서 기증 받은 20여 점의 우리 문화재가 공개됐다. 고종의 것으로 보이는 투구와 갑옷, 명성황후를 시해한 자객이 방에서 들고 나온 소반인 '풍혈반(風穴盤)' 등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것들이다. 도쿄박물관의 유물 공개는 문화재 환수운동을 벌여온 혜문 스님이 오구라 컬렉션 도록을 통해 관련 유물 존재를 확인하고 끈질기게 공개를 요구하자 마지 못해 응한 것이다.
▲ 일본 미국 독일 중국 등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는 모두 15만여 점으로 파악돼 있다. 이 가운데 절반 남짓은 일본에 있다. 주로 구한말, 일제강점기에 유출된 것으로 각 나라 주요 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국제박물관협의회 규약은 도난품 등을 기증받거나 구매하면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본에서 들여온 장물인 충남 서산 부석사 불상과 관련한 문화부장관의 발언이 논란을 빚었지만, 훔친 사실이 분명하다면 막무가내로 반환을 거부하는 게 능사는 아니다. 일본에서 돌려받아야 할 우리의 문화재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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