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박희일 LG전자 환경전략실 책임연구원은 미국과 유럽의 세계적 인증기관인 UL과 DNV에 "LG전자 세탁기를 대상으로 '물 발자국(Water Footprint)' 인증을 받아보겠다"는 깜작 제안을 한다.
물 발자국은 제품을 만들고 소비하는 전체 과정 동안, 직간접적으로 얼마나 많은 양의 물이 들어갔는지 알려주는 지표. 2011년 유네스코에서 평가 매뉴얼을 공표하며 주목 받기 시작했고, '탄소발자국(Carbon Footprint)'과 함께 환경보호를 위한 대표적 지표로 자리 잡고 있다.
유럽에서 농수산물이 받은 적은 있지만, 전자제품 같은 공산품 중에서 물 발자국 인증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 때문에 모두들 박 연구원의 제안에 반신반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10년 가까이 탄소 저감 등 환경 분야에서 일 해온 그는 물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 하루라도 빨리 추진해야 한다고 맘을 먹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현재 약 11억 명이 물 부족으로 고통 받고 있고, 2050년에는 세계 인구의 40%가 물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 게다가 국제표준화기구(ISO)도 내년 제정, 공표를 목표로 물 발자국 관련 국제 인증(14046)을 만들고 있다. 기업들도 이젠 환경 보호 차원이 아닌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라도 물 사용 절감과 수자원 보호 등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상황이다.
김진석 LG전자 환경전략실 팀장은 "이산화탄소 절감은 소비자들이 당장 피부로 느끼지는 못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물 절약은 곧바로 보고 느낄 수 있어 파급 효과는 훨씬 크다"고 말했다.
LG전자는 특히 인증 추진 대상으로 가전제품 중 가장 많은 물이 필요한 세탁기를 과감하게 선택했다. 박 연구원은 "다이렉트드라이브(DD) 모터를 중심으로 터보샷 신기술 등 세탁기 연구 개발과 생산에 있어 물 절약을 위해 얼마나 잘 해 왔는지 냉정하게 점검 해 보고 모자란 부분은 하루빨리 보완해 가자는 뜻"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과정 자체는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특히 500개 넘는 부품 하나하나가 만들어지는 데 얼마나 많은 물이 들어가는 가를 파악하기 위해 연구진은 제품을 분해해 부품의 무게는 물론 제조 공정 관련 기록을 분석했다. 또 두 인증기관을 직접 찾거나 끊임없는 화상 회의를 통해 전문가들과 의견을 조율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10개월 가까운 노력 끝에 LG전자의 드럼세탁기는 8월 유럽 DNV의 물 발자국 검증 작업을 마쳤고, 지난달 마침내 미국 UL로부터 '물 발자국 인벤토리(Water Footprint Inventory)' 인증을 받았다. 모두 세계 최초라는 게 LG전자 측의 설명. 김 팀장은 "부품, 소재를 만드는 과정에서 전체의 절반 가까운 양의 물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물 자원 절약을 위해서는 우리뿐만 아니라 부품, 소재를 만다는 협력 업체들도 동참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식기세척기 등 다른 제품에 대한 인증 절차도 밟아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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