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가 3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개막식을 열고 18번째 항해에 들어갔다. 영화제의 닻을 올린 작품은 '바라: 축복'이다. 부탄 불교의 고승인 키엔체 노르부 감독이 연출하고 인도 배우들이 인도의 풍습을 배경 삼아 삶의 희로애락을 세묘한다. 신분제도라는 벽에 가로막힌 인물들이 좌절하고 눈물을 삼키면서도 새로운 희망을 찾아가는 과정을 섬세한 감정 묘사로 전달한다. 조각가를 꿈꾸는 불가촉천민 청년과 전통 춤을 이어받는 젊은 여인, 후덕한 지주 아들의 금지된 삼각관계를 렌즈 삼아 인도의 억압된 현실을 스크린에 투영하기도 한다. 힌두교가 주류인 인도 사회를 불교적 세계관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이색적이며 인도 남부의 전통 춤 바라타나티암과 전통 음악을 함께 즐길 수 있다. 관객을 가슴 아리게 하면서도 종국엔 미소 짓게 만드는 수작이다.
노르부 감독은 이날 공개된 영상 메시지를 통해 "헌신과 상상, 믿음의 힘에 대한 영화다. 외부인의 시각으로 넓고도 깊은 인도 문화를 전세계에 소개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는 "평소 한국 영화에 대해 경외심을 지녀 왔는데, 부산영화제 개막작 선정은 매우 놀랍고 영광스러운 일"이라고도 했다. 노르부 감독은 부탄 고산 지대의 한 동굴에서 매년 이맘때 행해 온 수도를 지속하기 위해 부산을 찾지 못했다. 대신 이날 개막식에는 주연 배우 사하나 고스와미와 디베시 란잔, 제작자 나넷 넴스가 참석했다. 이들은 개막식 이전 열린 기자회견에서 감독에 대한 소회와 영화 제작 과정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려줬다.
인도 전통 춤을 배운 발리우드 배우 고스와미는 "이 영화는 순환에 대한 이야기"라면서 "감독님이 수도자라 해서 현장에서 다른 감독들과 딱히 다르다 생각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바라: 축복'으로 배우 데뷔식을 치른 란잔은 "감독님은 짧은 시간에 사람의 감정을 읽어내는 비범한 능력을 지닌 분"이라고 평가했다. 제작자 넴스는 "카스트 제도를 다루지만 특정 지역 영화라 생각하며 만들지 않았다. 관객들이 보편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영화"라고 소개했다. 넴스는 "노르부 감독님은 부탄 영화의 아버지이다. 나는 불교 제자로서도 감독님을 따른다"고 덧붙였다.
부산영화제는 12일 한국 독립영화 '만찬'(감독 김동현)으로 닻을 내릴 때까지 70개국 299편을 상영한다.
부산=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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