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타임스(NYT)는 2일 "미국 연방정부 폐쇄(셧다운)의 승자는 중국"이라며 "오바마 대통령의 동남아 방문 취소로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정책이 약화되는 반면 이 지역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셧다운을 이유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참석차 들르기로 한 말레이시아와 필리핀 방문을 전격 취소한 반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본격적인 동남아 끌어안기에 나선 것이다.
시 주석은 3일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인도네시아 국회 연설을 통해 "중국과 동남아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지만 2,000여년 전부터 교류해온 절친한 이웃"이라며 "중국은 동남아 국가와 상호평등의 기초 위에 '21세기 해상 실크로드'를 함께 건설, 공동 번영의 미래를 열길 원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2004년 인도네시아 쓰나미와 2008년 중국 원촨(汶川)대지진 당시 양국이 서로 도왔던 일을 상기한 뒤 "금전은 쉽게 얻을 수 있지만 친구는 쉽게 얻을 수 없다"며 "양국의 우의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귀중한 재산"이라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2020년까지 중국과 동남아의 무역액을 1조달러(약 1,075조원)까지 늘릴 것도 제안했다.
시 주석은 전날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도착,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관계를 전면적인 전략 동반자 관계로 승격시키기로 합의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아시아 기초시설 투자은행 건설안도 내놓았는데 이는 지난해 말 현재 3조3,000억달러에 달하는 중국의 외환보유고를 활용, 동남아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양국 중앙은행은 100억위안(약 1조7,500억원) 규모의 통화스와프 협정도 맺었다.
시 주석은 인도네시아에 이어 말레이시아도 방문해 나집 라작 총리와 만난 뒤 7, 8일에는 다시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다. 리커창(李克强) 총리도 지난달 광시(廣西)장(壯)족자치구 난닝(南寧)에서 열린 제10회 중국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엑스포에 참석, 해상 실크로드의 부흥을 제창한 바 있다.
이처럼 중국이 동남아를 향한 파상 공세에 나선 반면 미국의 아시아 복귀 정책은 셧다운에 발목이 잡혔다. 오바마 대통령은 당초 6일부터 일주일간 APEC 정상회의가 열리는 인도네시아를 비롯해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4개국을 방문해 경제 및 군사 협력 방안 등을 논의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셧다운으로 말레이시아와 필리핀 방문 일정을 막판에 취소하고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와 베니그노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에게 전화해 양해를 구했다. APEC 정상회의와, 브루나이에서 열리는 동아시아 정상회의도 정치권의 셧다운 협상 진행 과정에 따라 일정이 유동적인 상황이다. 이와 관련, NYT는 "셧다운이 미국에 엄청난 외교적 해악을 끼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NYT는 특히 말레이시아, 필리핀 두 나라가 그 동안 중국의 그늘 아래 있었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오바마의 방문은 아시아에서 미국의 중심적 역할을 확인할 기회였다"고 아쉬워했다.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이 3일 인도네시아 의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인도네시아 의회 연단에 선 시 주석은 중국과 동남아 국가의 경제협력 확대 방안 등을 제시했다. 자카르타=AP=연합뉴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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