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기록물이냐 공공기록물이냐'
'사초 실종'과 '대화록 불법 공개' 논란을 동시에 빚고 있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문건의 법적 지위를 두고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검찰이 사건에 따라 이 문서의 성격을 달리 해석하는 데다 여야도 성격 규정에 따라 처지가 미묘하게 바뀌는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할 수 있다.
검찰이 2일 참여정부 청와대가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국가기록원에 이관하지 않은 행위에 대해 사법처리를 시사하면서 꺼낸 혐의는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이다. 대화록을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해야 하는 문건인 대통령기록물로 본 것이다.
검찰은 그러나 올해 2월 "대화록에 NLL 포기 발언이 있다"고 주장한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 등에 대한 수사 발표 때는 다른 판단을 내렸다. 대화록을 국가정보원이 생산한 문서, 즉 공공기록물로 보면서 이들을 무혐의 처분한 것이다. 남재준 국정원장은 이를 근거로 올해 6월 대화록을 일반문서로 재분류한 뒤 공개해 큰 파장을 일으켰다.
대화록이 대통령기록물이라면 국가기록원 대통령기록관이 엄격하게 관리해야 하는 반면, 공공기록물이라면 국정원이 자체 규정에 따라 관리할 수 있다. 이는 대선을 앞두고 대화록 관련 발언을 한 새누리당 의원들이나 대화록을 공개한 남 원장의 불법 여부를 좌우하는 열쇠다. 민주당은 그간 "대화록은 대통령 직무 수행 관련 문서기 때문에 당연히 대통령기록물"이라며 대화록 공개가 불법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번 '대화록 실종' 사건에서 양측 입장은 미묘하게 바뀌고 있다. 검찰이나 새누리당은 대화록을 대통령기록물로 보면서 대통령기록관에 옮기지 않은 것을 문제 삼고 나섰다. 검찰은 올 2월 발표에서 대화록을 공공기록물로 판단한 데 대해서는 "국정원 보유 대화록은 국정원이 생산했기 때문에 공공기록물이고, 이번은 청와대가 생산한 것이어서 성격이 다르다"고 해명하지만, 정치적 상황을 고려한 아전인수식 해석이란 지적이다. 회담 내용은 조명균 당시 청와대 안보정책비서관이 녹음했지만 녹음 상태가 좋지 않아 국정원에 의뢰해 대화록을 만들었으며, 이후 수정 과정을 거쳐 청와대와 국정원이 대화록을 각각 보유하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상 동일한 생산 과정을 거친 문서를 상황에 따라 다르게 판단한 것이다.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장은 "정상회담 대화록은 당연히 대통령이 생산 주체가 되는 대통령기록물인데, 검찰이 대화록 공개에 면죄부를 주기 위해 무리한 판단을 했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도 곤혹스럽긴 마찬가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화록을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하지 않고 국정원에만 보관토록 지시했다면, 이 문서를 공공기록물로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기록물이란 입장을 유지할 경우 당시 청와대 실무자까지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으로 사법처리될 수 있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정상회담 대화록이 '실종 사건'과 '불법 공개 사건'에 함께 물려 있어 검찰이나 여야 정당 모두 딜레마에 처한 셈"이라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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