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엽불상견(花葉不相見). 꽃은 잎을 보지 못하고 잎은 꽃을 보지 못한다. 선방의 화두 같다. 이뭣고. 단전에 생각을 그러모아 참구(參究)할 것까진 없다. 글귀대로 해석하면 된다. 개화기는 9월 말, 10월 초인데 붉은 꽃이 지고 꽃대까지 문드러지고 나서야 잎이 난다. 꽃 진 곳을 더듬듯 잎은 바닥에 엎디어 자란다. 파릇한 모습으로 겨울을 난 잎은 초여름 모두 말라 죽는다. 그리고 그 죽은 자리에, 다시 한 가닥의 꽃대가 밀려 올라온다. 이 애틋한 상사(相思)의 몸짓을 해마다 반복한다. 석산(石蒜), 꽃무릇 얘기다.
한자 이름 석산의 산은 마늘 산자다. 돌마늘이다. 돌이 많은 흙에 육쪽마늘 잔뿌리처럼 후줄근한 가는 뿌리 몇 가닥을, 그것도 뿌리랍시고 박고 서 있다. 열매는 없다. 잎은 못 먹는다. 알뿌리(비늘줄기)가 있는데 맛은 없고 독소가 있어서 초근목피조차 정말 귀했던 시절에나 호미를 갖다 대볼 생각을 했다. 소용이 적어 애써 키우는 곳이 많지 않았다. 바람에 서해의 짠내가 묻어있는 전라도 땅에 주로 자란다. 그것도 여염이 아니라 절집 언저리의 그늘지고 습한 곳에 산다.
여기까지 들으면, 어딘가 짠하긴 해도 예쁨을 받을 일은 드물었을 것 같다. 과연 그러했다. 무지렁이 풀에 가까웠다. 그랬는데, 지금은 꽃무릇을 보겠다고 전국에서 북북 사람들이 몰려든다. 꽃 피는 시기 때문이다. 추분 지나고 한로 다가올 무렵, 붉은빛 가을은 휴전선 넘어 남하하기 시작하는데, 그 가을이 겨우 설악산 팔부능선 위쪽만 차지하고 옹송그리고 있을 때, 꽃무릇이 남쪽에서 먼저 붉은빛을 터뜨려 버리는 것이다. 머리 위 잎사귀는 아직 푸른데 무릎 아래에서 떼지어 번지는 핏빛 가을. 이 꽃을 찾아 떠나는 발걸음엔, 그래서 일찍 가을의 빛에 몸을 적시고픈 조바심이 담기기 마련이다.
꽃무릇으로 유명한 절은 고창 선운사, 영광 불갑사, 함평 용천사다. 제각각 '국내 최대의 꽃무릇 자생 군락지'라는 안내판을 세워놓고, 이맘때가 되면 멀리서도 잘 보이게 닦아 놓는다. 본디 절이란 사무량(四無量)의 집이니 어느 집 마당 붉은빛이 진짜 제일인지 따지는 분별은 부질없는 짓일 게다. 세 절 모두, 넉넉히 조선 땅 가장 넓은 꽃무릇 정원을 갖고 있다. 그런데 왜일까. 전라도 오래된 절집들에 이 꽃이 밀생하는 까닭은. 몇 가지 이야기가 있다. 여행길에선 종종 사리에서 멀어 보이는 얘기일수록 믿고 싶어지게 마련이다. 일테면 이런 얘기.
수선화과 상사화목에 속하는 꽃무릇의 원산지는 중국이다. 먼 옛날 장강의 물이 범람하면서 꽃무릇의 알뿌리가 바다에 흘러 들었고, 그것이 조류를 타고 우리나라 서해안에 와 뿌리를 내렸다는 설이 있다. 중국에 이런 전설이 전한다. 춘추시대 송(宋)의 폭군 강왕이 신하인 한빙의 아내를 강제로 빼앗았다. 그리고 한빙에게 죄를 씌워 멀리 쫓아버렸다. 한빙은 자결했고 소식을 들은 아내도 "남편과 함께 묻어달라"는 말을 남기고 뒤를 따랐다. 분노한 왕이 둘의 무덤을 멀찍이 떼어 놨으나 무덤에서 각각 나무가 아름드리로 자라나선 엉키어 연리목(連理木)이 됐다. 연리목 아래에서 붉은 꽃이 피었다. 사람들은 그 꽃을 상사화라고 불렀다.
시절인연도 찰진겁(刹塵劫)의 인연이다. 이 꽃이 진짜 그렇게 망명해 와서 한반도 사람들의 가슴 속에 철마다 상사의 주홍빛 마음을 일렁이게 만들고 있는 것이라면. 실제 유래는 이쪽에 가까울 듯하다. 꽃무릇을 즐겨 심는 곳은 일본. 전라도의 바닷가 고을들은 일본과의 교류, 혹은 왜구의 노략질에 쉽게 노출됐던 곳이다. 그렇게 왜인들을 통해 왔을 것이다. 그런데 꽃무릇 알뿌리엔 알카로이드 성분이 있다. 이것이 방부제 역할을 한다. 절집의 금어(金魚ㆍ그림 그리는 승려)들이 탱화를 그릴 때 꼭 필요한 재료다. 선운사와 불갑사, 그리고 용천사의 꽃무릇이 이곳에 무리를 이뤄 자라는 연유는 그것일 테다.
지난 주말 찾아간 선운사 입구엔 꽃무릇이 밭을 이루고 있었다. 들썩한 축제까지 치르고 꽃은 절정을 지났지만 여전히 붉은 기운이 흥건했다. 선운사 꽃무릇의 진면목은 행락객이 끓는 꽃밭보다 본사 지나 도솔암으로 이어지는 오솔길, 도솔천변에서 만날 수 있다. 호젓함이 절로 가는 길 중 조선 제일로 꼽히는 길이다. 소설 쓰는 정찬주가 "인간세에서 하늘로 가는 길"이라고 표현한 길. 그 길에 지금 꽃무릇이 피어 있다. 개울 복판에 거짓말처럼 몇 송이가 꽂혀 있었다. 자발없는 사진쟁이가 꺾어다 꽂아 놓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진짜였다. 꽃대 위엔 가을 선운산이 온 정성을 다 들여 피운 현란한 주홍빛이 벙그러져 있었는데, 꽃대를 붙들고 있는 수염뿌리의 강인함이 못지않게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불갑사로 갔다. 부처(佛)에 으뜸(甲)을 붙여 이름을 지었으니 이곳은 분명 으리으리한 절이었겠지만, 지금은 정확한 창건 연대와 창건주조차 전해지지 않는다. 천년의 기억을 그슬려 버릴 만큼 이 지역에 전란이 잦았다는 뜻일 게다. 다만 최근에 발굴된 유물을 통해 이곳이 백제 불교의 도래지였다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불갑사 꽃밭도 붉은 빛이 넘실대고 있었다. 꽃구경 온 사람들도 넘실대고 있었다. 이번 주말 꽃무릇을 보러 갈 마음이 인다면 이 절로 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꽃밭의 꽃들은 모지라져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절 뒤편 오솔길 따라 동백골과 구수재, 불갑산 연실봉(516m)으로 이어지는 길엔 늦게 핀 꽃무릇이 남아 있다. 대략 왕복 십리 산길, 걷는 데 서너 시간이면 충분하다.
꽃무릇을 가까이서 들여다볼 마음이 든 건 용천사에서였다. 테마파크의 꽃밭 흉내 내듯 커다란 정원을 조성해 둔 앞의 두 절과 달리, 이 절의 꽃무릇은 본래 제 자리에서 본래 제 표정만큼의 주홍으로 피어 있었다. 화사하고 푸근했다. 땅에 무릎을 대고 코를 가져갔다. 향은 거의 없다. 그러나 가까이 바라본 꽃의 모양은, 절에 피는 꽃치고는 요사스럽게 느껴질 만큼 화려했다. 가늘게 갈라져 거꾸로 뒤집힌 붉은 피침 무리 가운데 핏빛 꽃술이 날카롭게 박혀 있는 모습이 아찔했다. 거리를 두고 볼 때, 그래서 꽃무릇은 훨씬 어여뻐 보인다. 그리하여 마침내 든 생각. 꽃무릇의 불상견(不相見)이란, 너무 가까이 있으면 오히려 미워질 수 있다는 가르침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 생각해도 될 것이다.
[여행수첩]
●불갑사를 찾아갈 때는 서해안고속도로 영광IC에서 나와 광주로 이어지는 22번 국도를 탄다. 용천사로 가려면 22번 국도를 타고 가다 해보면에서 서쪽으로 꺾어지는 838번 지방도를 이용하면 된다. ●불갑사와 용천사는 산을 가운데 두고 각각 북쪽과 남쪽 자락에 위치해 한나절 나들이 코스로 모두 둘러볼 수 있다. 용천봉과 구수재, 동백골로 이어지는 두 절 사이의 산길 곳곳에 꽃무릇이 자생하는 군락지가 있다. 절 마당의 꽃밭보다 늦게까지 꽃이 남아 있는 편이다. 불갑사 (061)352-8097 용천사 (061)322-1822 ●함평군 신광면에 이곳이 고향인 독립운동가 일강 김철(1886~1934) 선생을 기리는 기념관이 최근 문을 열었다. 기념관 내에 상하이임시정부를 복원해뒀다. (061)320-3249
고창·영광·함평=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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