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청라지구의 112.2㎡(34평) 아파트에 사는 정모(37)씨는 다음달 지구 내 151.8㎡(46평) 집으로 이사한다. 이사온 지 1년도 안된 터라 각종 세금과 인테리어 비용 등을 감안하면 손해지만 중대형으로 갈아탈 적기라고 판단했기 때문. 정씨는 "중앙호수공원 등 내년 상반기까지 인프라가 상당 수준 구축되고 매매가격도 분양가의 25%에 불과해 더 이상 싼 기회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아파트 완성 후에도 주인을 찾지 못해 방치되던 수도권 중대형 미분양아파트가 최근 판매 호조를 보이고 있다. 업체들의 '눈물의 바겐세일'과 중대형 공급 급감, 집값 바닥 인식 확산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결과로 보인다.
30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수도권의 중대형 미분양 물량은 몇 달 전부터 꾸준히 팔리고 있다. 인천 청라지구에서는 A사의 128.7㎡(39평) 이상 중대형 미분양분 100개 중 70%가 6월 이후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B사도 39평 이상 중대형 물량의 70%가 두 달 만에 판매됐다. 경기 김포한강신도시에서는 C사가 39평 이상 미분양 70개 중 60여 개를 털어냈다.
이날 발표된 국토교통부 조사 결과, 수도권 미분양 중 34평 이상 중대형 비율은 2010년 70%에서 올해 8월 57%까지 떨어져 최악의 침체는 벗어나는 모양새다. 언뜻 보면 매매 활성화를 꾀한 '8ㆍ28 부동산 대책'의 효과처럼 비치지만 속내는 다르다.
우선 건설회사들이 자구책 차원에서 파격적인 할인 판매에 나선 것이 약발을 받고 있다. 중대형 미분양을 갖고 있는 업체 입장에서 분양가를 고수하며 자금이 묶이는 것보다는 할인을 해서라도 자금을 회전하는 게 재무구조에 도움이 된다. 실제 건설회사들은 계약자들이 잔금을 내지 못해 철회한 회사 보유분을 분양가보다 20~30% 싸게 팔았다. 한 중견업체 관계자는 "효율적인 자금 운용을 위해 눈물을 머금고 팔았다"고 말했다.
최근 5년간 중대형 공급이 급감한 게 향후 희소성을 높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수도권의 40평 이상 공급은 2007~2009년 3만1,726~5만4.363건이었으나 2010년 1만8,901건으로 줄었고, 지난해는 4분의 1수준(8,922건)으로 급감했다. 아파트 건설에 2년 반 정도 걸리는 걸 감안하면 향후 3년간은 40평 이상의 공급 부족이 명백하다. 일부 지역에서는 이런 현상을 간파한 투자자들이 중대형 미분양아파트를 여러 채씩 매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회사 보유분을 포함해 중대형 아파트 가격이 바닥을 쳤다는 분위기도 한몫 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집값이 바닥을 쳤다는 인식이 늘면서 중대형 미분양이 잘 팔리고 있다"고 말한다. 수도권의 40평 이상 가격은 정점이었던 2009년에 비해 현재 20% 정도 하락했다. 게다가 신도시나 택지지구의 교통여건과 생활인프라가 점진적으로 확충되면서 주거의 질이 높아져 집값이 더 이상 떨어질 수 없다는 인식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적으로는 다소 차이가 난다. 교통망과 학교 등 인프라 구축이 순항 중인 청라지구, 한강신도시와 달리 경기 파주시는 인프라 확충이 더딘데다 접경 지역에 따른 '안보 리스크'가 겹쳐 매매 문의는 늘고 있지만 잘 팔리지는 않고 있다.
배성재기자 passi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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