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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가 몰카 덫 놔 잡은 '강남 타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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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가 몰카 덫 놔 잡은 '강남 타짜'

입력
2013.09.30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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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업체 사장 김모(57)씨는 올해 1월 초 연회비가 700만원에 달하는 서울 강남의 한 호텔 피트니스클럽에서 만난 박모(59)씨와 급속히 친해졌다. 건강식품 제조업체 회장이라는 박씨로부터 식사와 골프 접대를 받은 데 이어 미모의 젊은 여성까지 소개받았기 때문이다. 박씨와 내기 골프에서 매번 이기는 것도 기분 좋았다.

그러다 두 달 뒤 김씨는 '카드나 한 번 치자'는 박씨의 제안을 받았다. 사기도박의 늪에 빠지는 순간이었다. 사실 박씨는 거액을 뜯어내려 김씨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전문도박꾼(도박 전과 6범)이자 사기도박단의 총책이었다. 도박단은 카드로 사기 기술을 부리는 일명 '타짜', 함께 도박을 하며 타짜를 돕는 '선수' 등으로 구성됐다.

박씨 일당이 벌인 수법은 영화 '타짜'를 재현한 듯 치밀했다. 이들은 카드 뒷면 무늬에 미세하게 음영을 넣어 상대의 패를 읽을 수 있는 특수카드를 게임에 사용했다. 또 패를 돌릴 때 위에 있는 카드를 돌리는 척하면서 맨 밑의 원하는 카드를 빼는 '밑장 빼기' 수법도 썼다. 타짜로 치면 전국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든다는 배모(54)씨는 처음부터 돌아갈 카드를 손바닥에 넣고 전체 패를 섞는 척하는 '탄' 기술도 구사했다. 이도 모자라 김씨 곁에 앉은 선수는 기권을 하면서 슬쩍 훔쳐 본 김씨의 카드를 손가락이나 발짓으로 동료들에게 알렸다.

이런 백화점식 사기로 이들은 올해 3월부터 최근까지 6개월간 13회에 걸쳐 경기 가평에 있는 김씨의 별장과 강남의 고급 식당 등에서 김씨를 상대로 5억7,000여만원을 뜯어냈다. 판돈은 한 판에 300만원에서 최고 3,000만원이나 됐다. 박씨 일당은 이 기간 의사, 증권사 간부, 고급식당 사장 등 여러 재력가도 사기도박에 끌어들였다. 경찰이 파악한 피해자만 7, 8명으로 피해액은 10억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뜯어낸 돈은 총책이 40%를 갖고, 나머지를 타짜와 선수들이 나눠 가졌다. 일부는 별다른 직업도 없이 포르셰 같은 고가의 수입차를 몰고, 60평형대 아파트에 살면서 '돈의 맛'을 음미했다.

그러나 '죽새(바보를 뜻하는 은어)'로 여겼던 김씨에 의해 박씨 일당은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수백 판 중 한 번도 못이긴 김씨가 뒤늦게 사기인 것을 눈치채고 지난달 9일 경찰에 신고한 것. 앞서 김씨는 자신의 별장에서 판을 벌이자고 한 뒤 이틀간 현장을 몰래 촬영했다. 증거를 확보하느라 김씨는 1,400여만원의 판돈을 잃었다.

사기도박단은 유치장에서조차 은밀한 조직력을 발휘하면서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진술한 것은 검찰에서 번복하라' '고소인과 합의하라' 등의 글을 쓴 책을 옆방의 일당들과 돌려보면서 조직적으로 범행을 은폐하려 했다.

서울 송파경찰서는 상습 사기 등 혐의로 총책 박씨 등 5명을 구속하고 도박기술자 정모(55)씨 등 4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30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박씨 등은 피해자의 배짱을 키워 판돈을 올리려고 필로폰까지 음료에 타 먹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잡히지 않은 일당 2명과 특수카드 제조책을 쫓고 있다.

손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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