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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윤동주 올바로 사랑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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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윤동주 올바로 사랑하기

입력
2013.09.30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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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이라는 시와 대중가요 ‘편지’의 가사를 윤동주 시인(1917~1945)이 쓴 것으로 알려진 경위는 한마디로 어이가 없다. 당초 나는 누군가가 악의적으로 왜곡하거나 사적 이익을 위해 조작했을 거라고 짐작하며 분개했지만, 취재 결과 사실은 그런 게 아니었다. 윤동주의 작품일 거라고 의심 없이 믿은 오해와, 남의 글을 확인하지 않고 퍼 나른 행위가 겹쳐 빚어진 일이었다.

먼저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을 살펴본다. 이 시는 윤동주 시인의 시가 아니라 월간 편집인인 정용철 시인이 1995년 9월호에 썼던 글이다. 당시 발행인이었던 그는 ‘9월의 내 모습’이라는 제목 아래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볼 이야기들이 있습니다’라는 전문(前文)에 이어 사람들을 사랑했느냐, 열심히 살았느냐,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일이 없느냐, 삶이 아름다웠느냐, 가족에게 부끄러움이 없느냐, 이웃과 사회와 국가를 위해서 무엇을 했느냐,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느냐 등 일곱 가지를 스스로 묻고 있다.

마지막 문단은 이렇게 돼 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자랑스럽게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나는 내 마음 밭에 좋은 생각의 씨를 뿌려 좋은 말과 좋은 행동의 열매를 부지런히 키워야겠습니다.’ 바로 여기 나오는 대로 이 글은 순전히 을 위한 칼럼이었던 것이다.

정씨는 이런 글을 매달 썼다고 한다. 그 중에서 바로 이 글이 윤동주의 시인 것처럼 널리 유포된 것은 알았지만, 누가 처음 그렇게 했는지는 그도 모르겠다고 한다. 정씨는 이름을 밝히지 않고 글을 쓴 것을 후회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퍼질 대로 퍼져 “그건 내가 쓴 글이요.” 하고 나서기가 어색해져 버렸다고 한다.

다음은 ‘그립다고 써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로 시작되는 가요 ‘편지’의 가사. ‘편지’는 작곡가 고승하 씨의 1984년 작품이다. 지금은 동요 작곡ㆍ보급단체 아름나라(경남 창원)의 이사장인 고씨는 당시 마산의 어느 고교 음악교사였다. 그 가사는 문구점에서 파는 노트의 표지에 윤동주의 글이라고 인쇄돼 있었고,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그만두려 하는 학생이 편지처럼 쓴 글에도 윤동주로 돼 있었다고 한다.

고씨는 ‘그립다고 쓸 바에야’가 아니라 ‘그립다고 써보니’라고 한 게 어색하다 싶었지만, 윤동주 시대의 어법이어서 그런가 보다 했다고 한다. 방황하는 학생의 마음을 잡아주고 싶었던 고씨는 영감처럼 악상이 떠올라 불과 10분 만에 작곡을 마쳤다.

그 뒤 1995년 작곡발표회를 계기로 가수 안치환에게 ‘윤동주 작사 고승하 작곡’의 이 노래를 불러달라고 의뢰했고, 안치환은 2년 뒤 작사자를 윤동주라고 명기한 ‘노스탤지어’ 음반을 냈다.

그러나 고씨는 10여 년 전 그게 윤동주의 글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남들이 지적해 주어 윤동주 시집을 확인해보니 그런 시가 없었다. 안치환은 이 사실을 알고부터 ‘편지’를 부르지 않았고, 그와 고씨 사이도 어색해졌다. 지금은 방송을 타거나 대중공연은 전혀 하지 않는다. 그저 고씨 혼자서 불러보는 정도라고 한다. 대체 누가 썼을까, 그만큼 노래가 불리고 널리 알려졌으면 내가 썼다고 누군가 나설 법도 한데 전혀 그런 사람이 없으니 고씨도 답답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가사에 곡을 붙인 작품이 지난해 ‘윤동주 시 작곡 경연대회’금상을 받는 일이 벌어졌다. 상을 제정한 윤동주기념사업회는 잘못된 걸 알고부터 당황과 낭패감 속에서 대책을 논의한 끝에 금상 수상작 악보를 홈페이지에서 삭제했다.

홈페이지에는 “해당 컨텐츠는 기념사업회 사정으로 인하여 사용이 불가능합니다.”라고 씌어 있다. 작곡자인 대학원생은 사업회의 통보를 받고 적잖이 당황했지만, 이내 사업회에 찾아와 스스로 상과 상금을 반납했다.

윤동주기념사업회는 이 일을 계기로 연세대가 발행한 윤동주 시집 에 실린 작품 외에는 ‘시 작곡’ 응모작으로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사업회 관계자는 그 역시 선의의 피해자인데도 용기 있는 결정을 해준 작곡자에 고마워하면서 앞으로 이 행사를 더욱 충실하게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잘못을 맨 처음 지적한 대구의 한 여중생은 결과적으로 윤동주에 대한 사랑과 이해를 한층 더 깊게 하는 데 크게 기여한 공로자다.

이제 처음으로 되돌아가 보자. 의도적이든 아니든 왜 이렇게 윤동주 시인을 욕보이는 왜곡과 오해가 빚어졌을까? 윤동주의 장조카인 윤인석 성균관대 건축과 교수의 말에서 그 답을 구해보고자 한다. 윤 교수는 윤동주의 동생 윤일주 전 성균관대 교수의 아들이며 아버지를 이어 같은 학과에 봉직하고 있는 분이다. 나와 주고받은 메일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다른 분의 시가 윤동주의 시로 잘못 알려지고 퍼져 나가는 것은 예전 같으면 잘못 알고 있는 사람 몇 명에게만 문제가 되었을 텐데 인터넷이 발달된 요즘은 빛의 속도로 전 지구상에 퍼져나가니 참으로 두려운 일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글이 아니면서도, 남의 글을 확인하지 않고 퍼 나르기가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성행하다 보니 이 지경이 되었다고 여겨집니다.”

편지는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임 선생님께서는 이런 일을 왜곡과 조작이라 하셨는데 어찌 보면 윤동주의 작품으로 잘못 알려진 시의 원작자 분들은 한편으로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그런 분들을 위로해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누군가가 악의로 행한 일은 아닐 테고 우리의 교육환경이 이렇게 만들었지 않나 생각합니다. 어려서부터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아서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면 정확하게 인용부호 써가면서 글을 작성하는 교육을 아직도 중등 교육기관에서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남의 글을 아무런 검토 없이 퍼 나르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그는 이런 오류가 윤동주의 작품에만 해당되는 게 아닐 거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이제는 구호만 외칠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진실 되게 생각하고 행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는 게 윤 교수의 결론이었다. 잘못된 사실을 알고 흥분하여 거친 표현으로 이를 고발한 나에 비해 그는 얼마나 의연하고 점잖은가?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또 한 번 사려와 분별을 배웠다.

남의 글에 함부로 손대거나 확인하지 않은 채 퍼 나르지 말 것을 모든 이들에게 다시 촉구한다. 이번 경우 윤동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 빚어진 일이지만, 그런 행위는 처벌받아야 할 범죄나 다름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용기 있는 결정으로 윤동주기념사업회의 큰 짐을 덜어준 작곡자가 앞으로 대성할 것을 기대하면서 사업회의 발전과 함께 윤동주 시인에 대한 일반인들의 사랑과 올바른 이해가 더 깊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 fused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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