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ㆍ5 정찰판결이 사라졌다. 경제적 기여에 대한 참작도 사라졌다. 직계 동시구속 배제도 사라졌다. 오랜 기간 재벌총수들에 대한 판결에 적용됐던 세가지 불문율이 모두 깨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29일 재계에 따르면 현재 구속되어 있거나 형ㆍ구속집행정지 상태인 재벌총수 일가는 모두 8명. SK그룹 최태원 회장 형제,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LIG그룹 구자원 회장 부자, 태광그룹 이호진 회장 모자, 그리고 아직 형이 확정되지 않은 이재현 CJ그룹 회장 등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경제민주화 바람 탓이겠지만 어쨌든 사상 유례가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재벌총수들의 수난이 이어지는 건 그 동안 법원에서 불문율처럼 내려왔던 양형 관행이 철저하게 깨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재벌총수는 아무리 높아도 '3년 징역-5년 집행유예' 판결을 받는다고 해서 '3ㆍ5정찰판결'이란 말까지 나왔던 양형 패턴이 사라지고 말았다. 집행유예는커녕 모조리 법정 구속되는 분위기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경우 1심에서 4년 실형을 받았기 때문에, 2심에선 감형이 기대됐지만 재판부는 그대로 4년 실형을 선고했다. 1심 무죄였던 최재원 부회장까지 3년6개월 형으로 법정 구속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경우 1심 4년에서 2심 3년으로 감형됐음에도 불구, 집행유예가 적용되지 않았다. 한 재계 관계자는 "3년 징역이면 집행유예가 가능한데도 실형을 선고한 건 재벌총수에겐 집행유예란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들어 재벌총수 가운데 집행유예가 선고돼 감옥에서 풀려 나온 경우는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뿐이다. 담 회장도 1심에선 3년 징역임에도 실형이 선고됐지만, 2심에서 집행유예 5년으로 조정돼 확정판결을 받았다.
'재벌총수=실형'이 굳어지는 건 국가경제에 대한 기여도가 인정되지 않고 있다는 뜻. 과거엔 죄질이 무거워도 경제에 이바지한 점을 들어 집행유예로 매듭 짓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한 법조계 인사는 "국가경제 기여도 같은 주관적 요소는 배제하고 오로지 범죄사실로만 판단하는 게 최근 대기업 총수 상대 재판의 특징"이라며 "지금 분위기라면 '재벌 봐주기'로 오해 살 수 있어 재판부가 아예 고려조차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부모 형제는 함께 감옥에 보내지 않는다'는 불문율도 깨진 지 오래다. 시작은 횡령혐의로 구속 기소된 태광그룹 이호진 회장과 모친 이선애 상무에 대해 법원이 각각 징역4년과 4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이호진 회장은 간암을 앓고 있었고, 이선애 상무는 80대 고령임에도 감형되지 않았다.
LIG구자원 회장은 기존 관행 모두를 깬 케이스. 70대 후반의 고령인데다, 불구속기소 상태였고, 아들(구본상 부회장)이 이미 구속됐기 때문에 집행유예를 기대했지만 법원은 그에게 3년 실형을 선고하며 법정 구속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김승연 회장처럼 3년이면 집행유예가 가능한데도 부자 동시구속 선고를 내린 건 재벌에 대해선 무관용 정서가 팽배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에 대해 재계에선 "일종의 역차별이다. 총수 봐주기도 안되지만 그렇다고 총수 죽이기로 가선 곤란하지 않느냐"는 항변이 이어지고 있고, 다른 한편에선 "유전무죄 폐습을 바로 잡는 과정"이란 평가를 내리고 있다.
재계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무조사 및 검찰수사에 따라 법정에 서야 할 총수들이 더 나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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