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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시계 10개월 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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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시계 10개월 전으로

입력
2013.09.29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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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동욱 검찰총장이 '혼외 아들' 의혹의 덫을 벗지 못한 채 30일 물러난다. 채 총장이 지난 4월 검찰 개혁을 통한 국민의 신뢰 회복이라는 중책을 맡고 취임한 지 180일 만에 불명예 퇴진함에 따라 그간 추진해 온 '검찰 바로 세우기' 작업도 좌초 위기에 빠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8일 채 총장의 사표를 수리했다. 법무부가 진상조사 결과 "의혹을 사실로 인정할 만한 증거를 확보했다"며 사표 수리를 건의한 지 하루 만이다.

느닷없는 '혼외 아들' 의혹 제기에 청와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정황이 드러난 이후 채 총장의 퇴진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그러나 어느 쪽 의혹도 해소되지 않은 채 다시 '검찰총장 공백' 사태를 맞은 검찰은 깊은 자괴감에 빠졌다. 검사들 사이에선 "검찰의 시계가 10개월 전으로 되돌아갔다. 그때보다 상황이 더 심각하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한상대 전 총장 재임 당시인 지난해 11월 검찰은 스스로를 '최악의 상황'으로 진단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줄곧 들었던 '정치 검찰'이란 오명에 더해, 김광준 검사 뇌물 사건과 전모 검사 성추문 사건이 터지며 부도덕한 집단이라는 비아냥까지 쏟아졌다. 이어 한 전 총장의 중수부장 감찰 지시로 촉발된 '검란(檢亂)'을 겪으며 검찰 내부에선 "이제 누가 검찰을 믿겠는가"라는 자조와 함께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지난 4월 채 총장의 취임 이후 검찰은 제 궤도를 찾기 시작했다. 대검 중수부 폐지 등 검찰의 일부 특권을 내려 놓고, 검찰개혁심의위원회 등을 통한 개혁 추진으로 땅에 떨어진 국민의 신뢰를 상당부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무엇보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비롯해 원전비리, 전두환ㆍ노태우 전 대통령 미납 추징금 환수 등 굵직한 수사에서 전 정권 때와는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한 검찰 간부는 "국민들로부터 공정한 수사기관이라는 얘기를 얼마든지 들을 자신이 있었고 실제 그렇게 되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그간의 성과가 물거품이 될 위기에 놓였다. 당장 검찰 개혁이 제대로 이뤄질지 의문이다. 4월 출범한 검찰개혁위원회는 지난 7월 중수부 폐지에 따른 대체부서 마련, 검사 비리를 전담하는 특별감찰부서 신설 등의 중간결과를 발표하고 상설특검 도입을 위한 방안을 논의 중이었다. 그러나 이번 일로 10월 초 열릴 예정이던 12차 회의가 무기한 연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위원은 "위원들을 임명한 총장이 물러난 마당에 개혁안을 논의할 동력이 사라졌다고 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검찰이 자체적으로 마련한 인사제도 개선 등 법무부와 협의가 필요한 사안 역시 채 총장 감찰 지시로 인한 양측의 껄끄러운 관계를 고려할 때 사실상 '물 건너 갔다'는 평가다. 중수부의 대체부서 마련을 위한 안전행정부와의 협의도 제대로 이뤄질 지 미지수다.

더구나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총장도 언제든 날아갈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며 검찰의 독립과 정치적 중립성은 더 요원해졌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앞으로 검찰총장을 보면서 국민들은 '정권이 시키는 대로 일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검찰로서는 정치권의 외압을 견뎌낸 공정한 수사라는 주장을 더 이상 할 수 없고, 국민 역시 웬만해선 믿지 않게 됐다는 얘기다.

한 대검 관계자는 "10개월 전만 해도 우리 스스로 노력하면 된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며 무력감을 호소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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