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간) 전화 통화를 갖고 이란 핵문제 해결 방안을 논의했다. 양국 정상의 접촉은 이란 혁명 및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 인질사건으로 양국 외교관계가 단절된 1979년 이후 처음이다. 양국이 핵협상을 계기로 관계 회복에 나설 경우 중동은 물론 국제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통화는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 일정을 마친 로하니가 귀국을 위해 공항으로 가던 중 통화를 원한다는 메시지를 미국 정부에 보내며 성사됐다. CNN은 미국 고위 관리를 인용해 두 정상은 핵문제, 대이란 경제제재 등 주요 사안 외에 간첩 혐의 등으로 이란에 장기 억류 중인 미국인 로버트 레빈슨, 아미르 헤크마트, 사에드 아베디니의 송환 문제도 논의했다고 전했다.
15분에 걸친 통화 후 오바마는 기자회견을 통해, 로하니는 트위터 메시지를 통해 통화 내용을 밝혔다. 오바마는 "로하니에게 '중요한 걸림돌이 남아있지만 나는 포괄적 해결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면서 "이번 대화는 양국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란 핵프로그램 관련 합의를 도출하기 위한 출발점"이라며 핵협상과 연계한 경제제재 해제 가능성을 밝혔다.
로하니는 "핵문제를 신속하게 풀기 위해서는 정치적 의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며 "(다음달 15, 16일 열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 및 독일(P5+1)과의 협상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밝혔다. 로하니는 "나는 '좋은 하루 되세요'라고 인사했고 오바마 대통령도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아랍어로 말했다"고도 했다.
이 같은 관계 개선 움직임은 양국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로하니 정부는 정권의 존망을 위협하는 심각한 경제난을 타개하려면 서방의 경제제재를 풀어야 한다. 오바마는 이란, 북한 등 적대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한 '핵없는 세계' 구현이라는 취임 초기의 외교적 포부를 실현할 기회를 잡았다. 안보리 결의로 시리아 내전 해결의 가닥을 잡은 미국이 반미세력의 맹주인 이란마저 비핵화하면 중동 내 입지를 획기적으로 넓힐 수 있다.
양국 정상의 통화를 '베를린 장벽 붕괴'에 비유하는 논평까지 나오고 있지만 결과를 낙관하기 이르다는 분석도 많다. 이란 내부에서는 대미 유화책에 대한 반발이 거세다. 로하니가 28일 테헤란 공항으로 귀국하자마자 일부 군중은 항의의 뜻으로 로하니가 탄 차량에 신발과 계란을 투척했다. 보수파는 로하니가 방미 중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집단학살)를 비판하자 이를 즉각 부인하는 방송을 내보내는 등 견제를 늦추지 않고 있다. 미국은 국내 보수정파뿐 아니라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 등 이란의 발흥을 우려하는 중동 동맹국의 반발을 달래야 한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오바마와의 회담 및 유엔총회 연설을 위해 29일 미국으로 출국하면서 "이란의 감언이설과 평화공세에 맞서 진실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이훈성기자 hs02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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