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고갱의 3대 걸작이 세계 최초로 한 자리에 모여 화제가 됐던 '낙원을 그린 화가 고갱, 그리고 그 이후'전이 29일 막을 내렸다. 6월 14일부터 석 달 반 동안 52만 관람객이 서울시립미술관을 다녀갔다.
이번 행사는 국내 최초의 고갱전이라는 점에서 개막 전부터 비상한 관심을 모았다. 화가의 대표작인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를 비롯해 '황색 그리스도', '설교 후의 환상' 등 3대 걸작이 한 데 모인다는 사실은 이를 더욱 부추겼다. 전시를 위해 파리 오르세 미술관,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등 주요 미술관 30여 곳에서 작품 60여 점이 공수됐으며 보험평가액만 1조5,000억원으로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다.
이번 전시회는 고갱의 예술세계를 심도있게 조명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미 대중에게 유명한 타히티 시절 대신 화가가 자기만의 색깔을 드러내기 시작한 브르타뉴 시절에 초점을 맞춰 고갱의 인생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도록 유도했다는 것이다.
전시를 기획한 서순주 총감독은 "한국에서 고갱만큼 인지도에 비해 작품세계가 덜 알려진 화가도 드물다"고 말했다. 기껏해야 고흐의 친구 또는 타히티의 여인을 그린 화가로만 알려졌을 뿐 고갱이 왜 거장으로 불리는지, 걸작이라 일컫는 작품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전시장을 찾은 한 여대생은 "고갱이 낙원을 묘사하기 위해 타히티 사람들을 그린 줄 알았는데 작가 내면의 고통을 표현한 작품이라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됐다"고 말했다.
미술계는 이번 고갱전을 끝으로 당분간 국내에서 이 같은 규모의 전시회가 열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남아 있는 고갱의 유화 작품은 겨우 500점으로 숫자가 워낙 적은 데다가 한 데 모으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내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열리는 고갱전도 드로잉과 판화 중심의 전시다.
서 감독은 "고갱은 고흐와 함께 후기 인상파 화가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은 최후의 인상주의 화가"라며 "고갱이 근대 미술의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란 사실을 알린 것이 이번 전시회의 가장 큰 수확"이라고 말했다.
반면 전시 구성에 대한 아쉬움도 없지 않았다. '고갱 그리고 그 이후'라는 타이틀 아래 현대 미술 작가 5명의 작품을 함께 선보였는데 연계성이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고갱의 작품 세계가 1900년대 초 한국 화단에 미친 영향이 분명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선정된 작가들은 그러한 경향과 무관하거나 관련성이 제대로 부각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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