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국가의 초입에 들어선 우리나라가 지향해야 할 모델은 무엇일까. 참여정부 이래 지난 10여년 간 중구난방식으로 복지정책을 도입하면서 복지국가의 모델로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 국가들이 활발히 논의됐었다. 하지만 복지정책이 본격적으로 확대되고 재원 마련이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면서 '중부담-중복지 국가'가 주목받고 있다.
북유럽 국가들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조세부담이 35% 안팎인 '고부담-고복지 국가'들이다. 하지만 국내총생산 대비 조세부담률이 20% 안팎으로 경제개발기구(OECD)국가 최하위권인 우리나라가 당장 이런 모델을 추구하기란 쉽지 않다. 무상급식, 무상보육 등 복지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는 급격히 높아졌지만, 지난 8월 1조3,000억원을 더 걷겠다는 세제개편론이 발표되자 '세금폭탄'이라며 반발했던 것만 봐도 갑작스런 증세에는 거부감이 강하기 때문이다.
중부담 중복지 국가의 전형으로 꼽히는 나라는 독일이다. 지난 4월 남경필 의원 등 새누리당 의원들이 독일 복지 전문가들을 초청해 토론회를 가졌고, 민주당 의원들도 6월 비공개로 독일모델 공부모임을 가지는 등 정치권의 관심이 높아진 것이 우연은 아니다. 북유럽국가들은 인구가 500만~1,000만명 정도인 반면, 독일은 인구규모가 8,000만명이라는 점에서도 우리가 벤치마킹할 적정한 대상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경쟁에 기초한 시장경제를 중시하면서도 시장의 낙오자들은 국가가 확실하게 보호해주는 '사회적 시장경제'가 독일 모델의 특징"이라며 "건국 이래 철저히 미국식 시장경제를 중시했던 한국의 보수세력과 이 문제점을 비판해온 진보세력이 타협을 할 때 참고할 만한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독일의 조세부담률은 22.0%(2010년)로 북유럽 국가들에 비해 10%포인트 이상 낮다. 북유럽의 사민주의적 모델이 보수세력으로부터 시장을 위축시킨다는 비판을 사고 있는 것과 차별되는 점이다. 대신 독일은 사회보험을 통해 경쟁의 탈락자들을 보호하고 있다.
특히 1990년대 중반 독일병이라 불릴 정도로 근로의욕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지적됐던 복지제도의 근간을 '일하면 국가가 책임진다'를 모토 아래 대대적으로 개선한 2003년 '하르츠 개혁'의 성공은 참고할 대목이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독일은 애초부터 복지와 고용의 연계가 높았고 하르츠 개혁 이후 연계가 더욱 강화됐다"며 "고용중심ㆍ고용친화적 복지를 추구할 필요가 있는 한국은 독일을 주목할 필요가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떤 국가의 모델을 취하느냐보다 그 모델을 추구하기 위해 어떤 합의과정을 거치는가가 더 중요하다. 독일의 경우 복지모델에 대한 합의는 노사정의 타협과 기독교의 사회운동을 통해 이뤄졌다. 현재 우리나라는 복지정책을 정쟁의 대상으로 삼아 정치적 맥락에 따라 정책을 뒤집는 일이 허다하고, 노사 상호와 정부에 대한 불신이 높아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낼 틀 자체가 매우 취약하다. 안상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기초연금 논란에서 보듯 선거정치에 의해 떠밀리다시피 복지국가로 이행돼서는 안 된다"며 "노사정, 비정규직, 농어민, 여성, 농민, 종교계가 모두 참여해 '한국형 복지국가'의 세금과 복지수준을 결정하는 타협의 정치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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