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투인. 영화 '스타 워즈'의 주인공 아나킨의 고향이자 제다이 기사 오비완의 은둔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타투인은 그저 공상과학영화 속 가상의 행성이었다. 그러나 2009년 우리 천문학자들이 태양계 밖에 실제로 타투인 같은 행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영화에서처럼 두 개의 별 주위를 공전하는 것이다.
29일 막을 내린 국립과천과학관의 '국제SF영상축제'에선 SF영화 상영과 함께 외계행성을 찾는 과학자들의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소개돼 참가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지금까지 발견된 외계행성은 1,000개에 육박한다. 그 중 12개는 신비롭게도 지구를 꼭 닮았다.
닮은꼴 점수 83점
한국천문연구원과 충북대 연구팀이 두 개의 별 주위를 공전하는 외계행성계를 찾아낸 뒤 외국 천문학자들이 이와 비슷한 다른 쌍성계들을 연이어 발견했다. 하루에 태양이 두 개 뜨고 두 개 지는 타투인 같은 행성이 태양계 밖에는 많은 모양이다. 태양계처럼 중심 별이 하나인 단성, 둘인 쌍성 행성계가 우주에는 대략 절반씩 존재한다는 추측도 나왔다.
타투인 같은 외계행성을 찾으려는 시도는 약 20년 전부터 시작됐다. 1992년 폴란드 연구팀이 처음 찾아낸 이래 계속해서 새로운 외계행성들이 정체를 드러내고 있다. 요즘은 해마다 평균 100~150개씩 발견된다. 세계 과학자들이 지금까지 찾아낸 외계행성은 총 997개다.
워낙 많이 발견되다 보니 이제 외계행성 발견 자체는 과학자들 사이에서 더 이상 큰 관심거리가 아니다. 중요한 건 지구와 닮았느냐 아니냐다. 지구처럼 아주 뜨겁지도 아주 차갑지도 않은 환경일수록 생명체가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기 때문이다. 지구와 닮은 행성을 과학자들은 곰이 끓어준 뜨겁고 차갑고 적당한 세 가지 스프 중 적당한 것을 먹고 기뻐했다는 영국 전래동화 속 소녀의 이름을 따 '골디락스'라고 부른다.
외계행성 997개 중 골디락스 행성은 12개(올 7월 말 기준)다. 과학자들은 골디락스가 발견될 때마다 지구와 얼마나 닮았는지를 따져본다. 지구와 같은 환경을 1이라고 하고, 0~1 사이의 점수(ESI)를 매기는 것이다. 지금까지 골디락스 중 가장 점수가 높은 행성은 '케플러(Kepler)-62e'로 ESI가 0.83이다. 지구와 83% 비슷하다는 얘기다. '글리제(Gliese) 667Cc'가 ESI 0.82로 뒤를 잇는다. 둘 다 해왕성보다는 작지만 지구보다 커 '슈퍼지구'라고도 불린다. 케플러-62e는 지구에서 거문고자리 방향으로 1,200광년(빛이 초속 30만km로 1년 동안 가는 거리, 1광년=9조4,670억7,782만km) 떨어진 별(케플러-62), 글리제 667Cc는 전갈자리 방향으로 약 23광년 떨어진 별(글리제 667C) 주위를 돌고 있다. 2010년 처음 발견된 골디락스 '글리제 581g'도 ESI가 0.82인데, 발견의 진위 여부를 놓고 논란이 있다. 천칭자리 방향으로 약 20.5광년 떨어진 별(글리제 581) 주위를 공전한다고 알려졌다.
지구의 운명 보여준 외계행성
과학자들이 끊임 없이 외계행성을 찾는 이유가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다. 외계행성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우주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단서가 되기도 한다. 2007년 이탈리아 연구팀이 발견한 외계행성 'V391 페가시(Pegasi) b'가 좋은 예다.
태양은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뜨거워지면서 커진다. 그럼 지구는 어떻게 될까다. 태양과 점점 가까워지고 더워질 텐데, 생명체는 둘째 치고 아예 지구의 존재 자체가 위협받게 될 지도 모를 일이다. 많은 과학자들이 먼 미래에 태양이 거대해지다 폭발한 뒤 지구가 맞게 될 운명을 예측하려 애썼지만 뾰족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그런데 V391 페가시 b와 그 중심별이 바로 미래의 지구와 태양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태양에서 지구까지의 거리를 1이라고 치면 현재 V391 페가시 b는 중심별에서 1.7만큼 떨어져 있다. 이 중심별의 질량은 태양의 절반이다. 과학자들은 중심별과 V391 페가시 b의 나이를 거꾸로 되돌려봤다. 그랬더니 오랜 옛날에는 중심별의 질량이 태양의 70%로 지금보다 훨씬 컸고, V391 페가시 b가 태양과 지구 간 거리만큼(1) 떨어져 있었다는 계산이 나왔다. 거대해지던 중심별이 터져 현재의 질량이 되자 작아진 만큼 공전하는 행성을 잡아당기는 힘(중력)도 줄어 V391 페가시 b의 공전궤도가 1에서 1.7만큼 멀어진 것이다. 결국 지구 역시 태양이 터지면 태양에서 좀더 멀어질 뿐 사라지지는 않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우리 망원경 내년 가동 시작
외계행성 발견의 일등공신으로 2009년 우주로 올라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망원경 '케플러'가 꼽힌다. 케플러 우주망원경은 별 주위를 공전하던 행성이 별 앞을 지날 때 잠시 빛이 가려져 어두워지는 순간을 포착하는 방법으로 외계행성을 찾아냈다. 예를 들어 목성이 태양 앞을 가리면 태양빛이 100분의 1, 지구가 가리면 1만분의 1 가량 어두워진다. 목성 정도 크기의 행성은 지상 망원경으로도 찾을 수 있지만, 지구만한 행성은 훨씬 정밀한 카메라로 가까이 가야 포착이 가능하다. 외계행성 탐색에 우주망원경이 필요한 이유다.
아쉽게도 케플러 망원경은 올 봄 수명을 다했다. 비슷한 망원경이 2018년에야 올라갈 예정이다. 그래서 우리 천문학자들이 나섰다.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칠레, 호주에 직접 거대한 망원경(KMTNet)을 세워 외계행성을 찾기로 한 것이다. 김승리 천문연 천문우주사업본부 광학천문센터 책임연구원은 "올 12월과 2014년 2월, 6월에 각각 칠레와 남아공, 호주에 망원경 설치를 완료해 내년 하반기부터 본격 관측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상에 세워질 이들 망원경은 케플러 망원경과 반대로 밝아지는 순간을 포착한다. 두 천체가 관측자와 일직선상에 있으면 관측자와 가까운 천체가 돋보기 렌즈 역할을 해 먼 천체가 훨씬 밝게 보인다(중력렌즈 현상). KMTNet은 바로 이 원리를 이용한다. 그런데 케플러 망원경보다 발견 확률이 떨어진다. 케플러 망원경이 1,000번 관측할 때 외계행성이 한두 개 나오는 정도라면, 중력렌즈 현상으로는 10만 번에 한두 개 꼴이다. 김 연구원은 "그래서 한번에 수억 개 별을 관측할 수 있는 대규모 망원경을 남반구에 설치해 발견 확률을 높이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별이 많이 모여 있는 우리은하 중심부를 북반구보다 남반구에서 더 오랫동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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