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식구들과 점심을 먹는데 기초연금 문제가 화제에 올랐다.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젊은 편집자가 주저 없이 답한다. "증세를 못하니 깎을 수밖에요." 평소 이 정부에 극히 비판적인 친구이기에 의외이다 싶다가 이게 상식이지 하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인다. 혹시 이런 풍경에 누군가 흐뭇하신가? 좋아하지 말라. 그런 뜻이 아니니까.
그 대답에는 두 가지 비판적인 뉘앙스가 숨어있는데, '증세 없는 복지'를 내세웠던 이 정부의 공약에 대한 비웃음과 함께, 증세는 기피하면서 자신의 복지 혜택이 줄어드는 데는 극히 민감한 사람들에 대한 지적이기도 한 것이다. 개인들의 이기심이야 새삼 탓할 바가 없고, 기초연금을 둘러싼 요즘의 분란은 결국 누이 좋고 매부도 좋아할 거짓말로 표만 얻으면 장땡이라는 정치 논리가 낳은 결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진짜 누이와 매부의 일이라면 가정파괴범 소리나 듣고 말겠지만, 손해를 보게 된 청장년층과 크게 달라질 게 없는 노년층 사이까지 갈라놓았으니 '국민 이간질꾼'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기초연금 논란은 바로 지난달의 증세안과 그에 대한 거센 저항에 놀라 부랴부랴 안을 철회했던 일을 떠올리게 한다. 이 정부는 흐르는 물을 막으면 다른 데서 터진다는 이치도 모르나 보다. 증세 불만을 피하려니 기초연금에서 터진 것이다. 바라는 대로 과연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하려면 그 재원 확보는 '성장'을 통한 세수 증대밖에 없을 텐데, 경제성장이 한계점에 와있음을 다들 느끼는 터에 이런 낙관주의라니! 이 정부는 아마도 '창조경제' 따위로 한계에 이른 성장을 다시 이끌 수 있으리라 믿는 모양이지만, 창조경제나 증세 없는 복지나 같은 머리에서 나온 것이니 신뢰가 안 간다.
경제학도 재정원리도 배운 바 없는 무식한 국민들은 '국민연금을 오래 낸 사람에게는 기초연금을 덜 준다'는 논리가 도통 이해되지 않아 이 참에 공부 좀 했을 것 같다. 현재 국민연금은 소득비례 부분과 소득재분배 부분을 합산해서 지급액을 결정한다. 즉 자기가 낸 돈에 더하여, 전체 가입자(아직 연금을 안 받는 가입자 포함)가 낸 돈을 적절히 나눠 재분배하는 방식이다. 최근의 수수율이 1.8배라니 수령자들은 그간 낸 보험료의 0.8배에 해당하는 재분배 혜택을 입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국민연금액 중 이런 소득재분배 혜택은 오래 가입한 사람이 더 많이 받게 되어있다. 이번 기초연금제의 골자는 바로 이런 가입자에게 기초연금을 덜 줌으로써 소득재분배를 공평화하겠다는 것이다. 이게 왜 공평한가 하면, 국민연금의 소득재분배 부분과 기초연금액은 수혜자가 낸 돈이 아닌데 공짜로 받는다는 점에서 성격이 같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으로 공짜 혜택을 더 받는 사람은 기초연금을 덜 받으라는 얘기니 나름 논리가 있다. 물론 이 돈은 '공짜'가 아니다. 우리가 내는 세금이나 국민연금의 운용수익, 전체 가입자 기여금으로 재원이 충당되기 때문이다.
기초연금 축소의 논리가 이러하다면, 국민연금 장기가입자가 받을 공짜 혜택이 여전히 단기가입자나 미가입자보다 클 게 분명한데 왜 사람들은 이토록 분개하는가? 굳이 혜택을 안 줄여도 '증세'라는 수단을 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난번 증세안이 아니라 법인세 감면 철회나 고소득층 증세와 같은 방식이다. 법인세 회복만으로 60조 세수가 확보된다니 깜짝 놀랄 일이다. 사실이 이러한데 정부는 또 기업의 투자위축과 '성장'을 운운할 것인가?
대통령의 이번 사과에서 눈에 띄는 것은 '국민대타협위'였다. 언제쯤 하겠다는 언급이 빠져서 의심이 가지만 옳은 구상임에 틀림없다.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국민 누구나 납득할 만한 학자, 양심적 기업가, 노동자들로 테이블을 구성한다면? 증세, 기초연금, 국민연금을 모두 이 테이블에 올리고, 반값등록금이나 무상보육 같은 정책까지 모두 놓고 끝까지 합의를 도출하는 것이다. 시간이 얼마나 걸린들 어떠한가. 이것만 할 수 있다면 아마도 이 정부는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기초연금의 복잡한 논리와 어이없는 결론에 화난 국민들을 설득할 유일한 길인지도 모른다.
안희곤 (사월의책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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