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수사를 위해 국정원 여직원 김모(29)씨의 컴퓨터를 분석하던 서울경찰청 디지털증거분석팀이 김씨의 인터넷 접속기록 30만건 중 10만건만 분석하고 전수 조사했다고 발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분석관들은 분석 중 CCTV에 음성이 녹음되지 않도록 볼륨을 줄이려 시도하기도 했다.
2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1부(부장 이범균) 심리로 진행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공판에서 검찰은 서울청 디지털증거분석팀의 작업과정이 녹화된 CCTV 동영상을 공개했다. 12월 13~16일 127시간 동안의 분석과정 중 일부다.
동영상에는 14일 오후 11시 30분쯤 임모 분석관이 이적단체 강제 해산법, 한일군사정보협정 관련 글을 발견하고 "이것도 우파 글이네요"라며 여론공작 정황을 포착한 장면이 나왔다. 이후 임 분석관은 "우리가 지금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잖아. 좌파니 우파니 하는. (그래서) 여기 마이크를 죽였다""이 CCTV 어디 제출되기라도 하면"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분석관들의 조작 미숙으로 음성은 그대로 녹음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분석관들이 국정원 측의 말을 믿고 (정치 관련 댓글이) 안 나올 것으로 예상해 공개 녹음을 하다 댓글이 나오자 녹음을 막으려 한 것"이라며 "'공개 녹음을 하는 등 (분석 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해 떳떳하다'는 김 전 청장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동영상에는 김씨의 30만 건 접속 기록 중 20만건을 분석하지 않은 정황도 발견됐다. 한 분석관은 "시간 기록이 없는 게 20만 건"이라는 동료의 말을 듣고 "다행이네. 저녁 먹기 전까지는 끝나겠다"고 말해 사실상 분석 대상에서 제외했음을 시사했다. 또 검찰은 "분석팀 논의에서 한 분석관이 '20만 건 다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밝혀 이를 뒷받침했다. 삭제된 파일을 복원할 경우 시간기록이 없을 수 있어 분석에서 제외된 20만건에 대선개입 여부를 밝히는 댓글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높다. 경찰은 16일 중간수사결과 발표 당시 "김씨 접속 기록을 전수 조사했다"며 불법 댓글 작성 등은 없었다고 허위 발표했다.
경찰이 수사 축소ㆍ은폐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진 15일 서울청 수사과장 주재회의 직후 분석팀이 분석을 축소한 사실도 드러났다. 당시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기로 한 김모 분석관은 "(수사결과 발표 전까지) 팀장이 수서서의 분석 의뢰 사항 중 우리가 뭘 할 수 있는지 적어 오라고 했다"며 "나머지는 할 시간이 없다"고 말해 정해진 발표 시한 때문에 분석을 다 하지 못했음을 시사했다. 그는 또 "수서서 수사팀이 제출한 증거분석 의뢰서가 우리 발목을 잡고 있다. 나중에 너네 왜 이거 안 했냐는 말이 나올 것"이라며 걱정했다. 임 분석관은 "아침에 잠 자다 (윗선으로부터) 번개를 맞았다" "진짜 위에서 누르는 중압감 때문에…"라고 피로감을 호소했다.
동영상에는 "(김씨가) 글을 삭제한 사실이 확인되는 만큼 해당 업체의 서버를 압수수색 해야 한다", "네이버, 다음, 오늘의 유머, 보배드림 등 주요 사이트의 접속 기록을 모두 출력하면 2,000~3,000페이지가 되는 만큼 통계를 내서 한 장으로 정리해야 줘야 한다", "(추가 삭제 위험이 있으니 파악된 자료를) 수사팀에 구두로라도 전달해 빨리 확인하게 하자" 등 분석관들이 수사의 빠른 진행을 위해 노력한 부분도 다수 보였다. 하지만 검찰은 "지휘부에서 수사결과 발표 데드라인이 정해지고 축소 발표 방침이 전해지면서 분석팀의 분위기가 급변했다"고 설명했다.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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