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최인호 앞에는 '감수성의 천재', '시대에 영합한 통속 작가'란 엇갈린 수식어가 함께 붙는다. 등 시대를 풍미한 소설은 최인호를 스타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통속작가 꼬리표를 붙어 그의 문학적 성취를 평가절하 했다는 지적이다.
최인호는 데뷔 초 세련된 문체로 도시문학의 지평을 넓히며 문단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작고한 문학평론가 김현이 그를 '30년대의 이효석, 50년대의 손창섭, 60년대의 김승옥'에 비교했을 정도로 재능을 아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화다. 단편 '술꾼' '처세술 개론' '타인의 방' 등을 발표한 1970년대 초반 문단에서는 "1960년대에 김승옥이 시도했던 감수성의 혁명을 더욱더 과감하게 밀고 나간 끝에 가장 신선하면서도 날카로운 감각으로 삶과 세계를 보는 작가"(문학평론가 조남현)란 상찬이 이어졌다.
그러나 1972년 조선일보에 연재한 소설 을 분기점으로 그는 본격문학과 거리를 둔 대중작가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유흥가 여성 경아를 주인공으로 한 이 소설은 최인호를 스타작가로 만들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호스티스 문학'이란 신조어를 만들며 이후 출간된 그의 모든 소설을 평가 절하시킨 원흉으로 꼽힌다.
이선미 경남대 국문과 교수는 "소설이 영화화되고, 당대 사회적 분위기와 엮이면서 폄하됐다. 구체적으로 작품을 논증하지 않고, 미리 통속작가란 관념을 갖고 평가하는 면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작가가 을 연재, 출간한 1972~75년 사이 단편 '황진이 1' '전람회의 그림 1', 중편 '무서운 복수' 등 문학계에서 중요한 평가를 받은 상당수의 작품을 잇따라 발표한다. 절정의 역량과 보기 드문 대중성을 과시하지만, 작가는 "과장된 수사, 팽팽한 속도감, 관능적인 분위기, 생동하는 문체, 흥미 만점의 구성, 우상파괴적 제스처. 어느 하나도 오늘날 대중에게 어필하지 않는 것이 없다"(문학평론가 이동하)란 평가를 듣는다.
작가는 순문학과 대중문학을 나눠 자신을 폄하했던 당시 문단 풍토에 대해 "민중과 대중이 다르다고 생각하여 민중문학은 고급문학이니까 비상업적이고 대중문학은 저급하니까 상업적이라고 보는 것은 잘못이다. 민중문학이라고 내세우는 것 자체가 상업주의 아닌가"(동아일보 1979년 11월 8일자)라며 불만을 토로한 바 있다.
한편, 유년시절 극심한 가난을 경험했던 작가가 가장으로서 부담감을 느껴 대중문학과 본격문학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완성했다는 해석도 있다. 최씨는 1975년 1월1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30년대의 예술가들은 생활과 예술을 완전히 분리시켜 어느 한편, 그것도 생활 쪽이 희생되는 일이 많았다"며 "(70년대 예술가인 저는) 가장으로서의 생활의 책임이 철저히 요구되는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에 갈등을 느끼면서 생활과 예술 양자 사이를 줄타기하는 것 같다"고 말한 바 있다.
1974년 계간지 봄호에 '타인의 방' '술꾼' 등을 재수록하며 미학적 평가를 시도한 김병익 문학과지성 상임고문은 '그의 문학이 퇴폐적이라면 그 문학이 가능하게끔 한 이 사회가 퇴폐적이라는 말이 되고 이 세계가 타락한 상업주의의 구조라면 그의 문학 또한 운명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고 평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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